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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5000만 vs 3100만, 해외동포 앞세운 시진핑·모디의 기싸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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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EPA=연합뉴스]

지난 7월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EPA=연합뉴스]

중국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화교(華僑)·화인(華人)의 자본·네트워크의 도움으로 빠른 성장을 이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화교는 중국 본토나 대만·홍콩·마카오 등 중화권의 밖에 이주해 살면서 국적을 계속 지닌 사람이고, 화인은 외국 국적 취득자다. 이들은 국적과 무관하게 중국계라는 사실만으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유대인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계의 숨은 세력으로 평가받는다. 해외 중국인은 최대 5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퍼져있는 해외 인도인 #화교와 곳곳에서 주도권 다툼 #시, 인도계 다수 모리셔스 방문 #글로벌 인도 네트워크에 도전

이러한 화교 못지않은 세력이 ‘해외 인도인(OI)’이다. 인교(印僑)에 해당하는 인도 국적 해외 거주자(NRIs)와 인인(印人)으로 부를 수 있는 인도계 외국 국적자(PIOs)를 합친 개념이다. 인도 외교부의 지난해 연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해외 인도인은 전 세계 312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인도 국적자가 1332만, 현지 국적자가 1790만 명이다. 유엔경제사회국(DESA)에 따르면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를 내보낸 나라로 그 뒤를 멕시코·러시아·중국·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이 잇는다.

인도 이민자는 영국 식민지 시절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남태평양 등의 다른 식민지로 이주한 사람의 후손이거나 중동 개발붐을 타고 걸프 지역 산유국으로 떠난 노동 이민자가 주류다. 오늘날 인도 경제가 성장하고 글로벌화가 이뤄지면서 이주민들은 인도 외교와 기업의 해외 진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오랜 세월 다량 이주를 통해 인도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현지 상권은 물론 정치권력까지 장악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를 빼고는 이민 국가의 정치권력을 차지한 경우가 없는 중국계와 비교된다.

이런 나라는 중남미에만 3개국이 있다. 1972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카리브 해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대표적이다. 135만 인구 중 인도계가 55만6800명에 이른다. 인도계(35.4%)와 아프리카계(34.2%) 비율이 비슷하고 두 민족의 혼혈인 두글라도 인구의 7.7%에 이른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 나라는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세력이 90년 이후 번갈아가며 총선에 승리해 총리를 배출해왔다.

영국 식민지에서 66년 독립한 브라질 북부 가이아나는 인구 77만3000명 중 인도계가 29만7700명이다. 인도계(43.5%)는 아프리카계(30.2%)·혼혈(16.7%)·원주민(9.2%)보다 월등히 높은 인구 비율에 힘입어 국정을 주도한다. 인도계 모제스나가무투 총리가 2015년부터 재임 중이다. 가이아나와 접경한 수리남은 75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했는데 인구 55만 8300명 중 인도계가 15만4400명이다. 인도계(27.4%)는 마론(도주 아프리카계 노예와 원주민 혼혈, 21.7%)·크레올(유럽계와 비유럽계 혼혈, 15.7%)·자바인(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계, 13.7%)·다인종혼혈(13.4%) 사이에서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인도계 아슈인아드힌 부통령이 2015년부터 재임 중이다.

전 세계로 퍼진 인도계

전 세계로 퍼진 인도계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는 인구 91만2200명 중 인도계가 31만5200명이다. 이타우케이로 불리는 피지 원주민(56.8%)이 과반수지만 경제권은 인도계(37.5%)가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정국이 불안하다. 2006년 쿠데타로 집권한 인도계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2007년부터 총리를 맡고 있다.

아프리카 서남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는 인구 126만2100명 중 인도계가 89만4500명이다.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82년 이후 인구 조사에서 소속 민족을 묻지 않을 정도로 인도계 입김이 강하다. 인도계인 프라빈드 주그나우트 총리가 올해 1월부터 재임해 권력을 쥐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인구 13억의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7월 22~28일 아프리카를 순방하면서 인구가 1000분의 1도 안 되는 이 작은 섬나라를 굳이 찾았다는 사실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7월 25~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세네갈과 르완다를 찾았으며 귀국길에 모리셔스를 들렀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르완다를 방문한 데 이어 인도계의 아성인 모리셔스까지 찾았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인도와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인 점 외에 인도계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인도는 오랫동안 아프리카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식민지 시절 수많은 인도인이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로 떠나 상업·무역 등에 종사하며 터를 잡았다. 인도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인도계는 오늘날에도 남아공 156만 명을 비롯해 케냐(8만)·탄자니아(6만)·우간다(3만) 등 아프리카 전역에 250만 명이 거주한다. 특히 남아공은 인도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년)가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간디는 1893년 남아프리카 나탈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기차 일등석에서 쫓겨나는 인종차별을 당한 것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아프리카에 20년 이상 거주하며 차별당하던 인도인 동포를 돕고 독립운동을 조직했다.

이처럼 아프리카와 인적·역사적으로 오랜 인연을 유지해온 인도의 아성에 중국이 도전하면서 앞으로 파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앞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돈 보따리를 들고 인도계가 장악한 나라의 문을 두들길 가능성도 크다. 해외 거주 인도인들이 중국의 공세 앞에서 ‘핏줄의 본능’과 ‘돈의 맛’ 중에서 어디에 빠져들지도 주목된다. 전 세계적으로 화교와 인교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전 세계에 710만 명의 해외 교민이 있는 한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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