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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 50만원·5일 입원 161만원···개도 웃을 진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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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1000만명 시대지만 고(高) 의료비용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 1000만명 시대지만 고(高) 의료비용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동물병원 진료비 폭탄, 부르는 게 값?

경기도 성남에 사는 심모씨는 최근 자신의 반려견 ‘뽀삐(가명·4살)’가 설사를 자주 하자 집 근처의 동물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뽀삐는 장염이었다. 하루 입원·치료를 받으니 다행히 증세가 호전됐다. 하지만 심씨는 병원비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적잖이 놀랐다. 입원비 등을 포함해 50만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청구된 의료비용이 적정한지 판단할 수 없었던 그는 돈을 내고서도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심씨는 “모르니 당한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말 한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강아지 췌장염 5일 입원 병원비’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첨부된 병원비 영수증에는 161만원이 인쇄돼 있었다. 수회의 혈액검사, 수액주사, 입원비 등이 줄줄이 담겼다. 작성자로 보이는 이는 댓글 창에 “병원에 따지고 싶어도 뭘 알아야 하는데…아무것도 모르니 할 수가 없네”라고 썼다.

지난해 8월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게시된 동물병원의 영수증. 161만원이 인쇄돼 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지난해 8월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게시된 동물병원의 영수증. 161만원이 인쇄돼 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반려동물 보호자 80% 이상 "비싸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 시대를 맞았지만, 고(高) 의료비용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동물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민간보험도 미미한 수준이다 보니 질병이 발생할 경우 사람보다 비용 부담이 큰 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관련한 지출 중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항목(복수응답)은 ‘사료·간식비’(85.8%) 다음으로 ‘질병·부상 치료비’(64.0%), ‘예방 접종비’(58.9%) 등 순으로 나타났다.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치료·접종비지만 ‘비싸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80% 이상(한국소비자원)이다.

[자료 한국소비자원]

[자료 한국소비자원]

이런 상황에서 병원마다 들쭉날쭉한 의료비용과 진료행위에 대한 충분하지 않은 설명 등이 고비용 논란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말 (사)소비자시민모임이 서울시 내 동물병원 193곳을 조사해보니 일반혈액 검사비는 병원별로 적게는 2만5000원에서 많게는 15만원으로 6배 차이가 났다. 중성화 수술비도 마찬가지(5만원~30만원)였다. 복부초음파·치석 제거비는 5.5배 차이를 보였다. 비싼 진료비는 소비자 피해 외에도 유기동물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도 작용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유기동물보호소 내 반려견

유기동물보호소 내 반려견

표준수가제, 진료비공시제 법안 발의

이에 동물병원 진료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소비자 요구가 높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수의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의료행위마다 가격을 정한 표준 수가제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현재 동물진료 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로는 독일이 대표적이다. 1940년대부터 수가제를 도입한 독일은 진료 난도·시간·출장 여부·지역 상황 등을 고려해 정해진 비용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 의원 측은 “개정 수의사법이 시행되면 진료비 폭탄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가제가 한동안 시행되다 1999년 동물병원의 담합을 막고, 자율경쟁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로 폐지됐었다.

동물병원 의료구급 키트 자료사진.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동물병원 의료구급 키트 자료사진.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앞서 올 1월 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정부가 동물병원의 진료비 현황을 조사·분석한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수의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원 의원 측은 “과거 수가제 폐지 이후 가격 인하를 경쟁적으로 유도하려던 정책적 목표와 달리 고액 진료비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며 “진료비 안정을 위해서는 의료수가의 공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표준 수가제나 진료비 공시제가 도입될 경우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다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국내 반려동물 보험사업의 저해요인 중 하나로 병원 간 비용 편차로 인한 진료비 예측의 어려움 등이 꼽혀왔다. 국내 반려동물의 민감보험 가입률은 0.1% 미만의 미미한 수준이다.

경기도내 한 병원을 찾은 반려견의 상태. *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경기도내 한 병원을 찾은 반려견의 상태. *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중앙포토]

대안으로 '개별병원 공시제' 떠올라

하지만 수의업계는 두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한 관계자는 “최저수가가 정해지면, 자율경쟁에 따른 가격 인하가 사라져 오히려 보호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또 동물병원별로 서로 다른 진료 항목을 표준화하지 않고 공시제 등을 시행할 경우 혼란만 가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우선 ‘개별 병원 공시제’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수의임상포럼이 진행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는 “진료 빈도가 높은 항목, 진료비 부담이 큰 항목 등 우선순위를 정해 의무 고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 가격경쟁을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단, 의학전문용어가 아닌 소비자들이 가격 비교를 하기 쉽도록 공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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