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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일각의 ‘반대기업 정서’ 사라져야 투자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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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만났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처음이고, 대기업 현장 방문은 LG·현대차·SK·신세계에 이어 다섯 번째다. 김 부총리는 삼성 경영진에 ▶미래 성장동력의 선도적 역할 ▶동반성장의 모범 ▶국민의 지지와 국내외 투자자 신뢰 등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투자와 고용 얘기는 없었다.

김동연-삼성 만남이 왜 논란인가 #더 자주 만나 기업인 기 살리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야

김 부총리와 삼성의 만남은 지난주 일부 언론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를 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총리는 지난 3일 이례적으로 발표한 개인 명의의 입장문에서 “대기업은 네 번 만났지만 투자나 고용 계획에 대해 간섭한 적이 없다”며 “(구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국민이 바라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청와대는 6일 일부 언론의 ‘구걸’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득주도 성장의 이름으로 거칠게 밀어붙여 온 반기업 정책의 흐름에서 볼 때 청와대 일각에서 경제부총리와 삼성의 만남을 어떤 시각으로 봤을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고위 경제관료와 대기업의 만남이 화제가 되고,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개입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정부가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요청하는 것 자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대기업 투자를 독려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강요와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도 김대중·노무현·트럼프 대통령에게 ‘구걸’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초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삼성이 국내에서도 투자를 많이 해 달라”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이런 마당에 터져나온 ‘투자 구걸’ 논란은 청와대 일각의 비뚤어진 반(反)대기업 정서를 드러낸 것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외국에 나가서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 국위선양이고,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 투자를 요청하는 것은 구걸이라고 한다면 청와대의 이런 저급한 인식에 많은 국민이 한숨만 보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돈벌이가 된다면 아무리 말려도 스스로 알아서 투자하는 게 기업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회의에서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이 높아져야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며 규제 개혁과 혁신 친화적 경제환경 조성을 주문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대통령의 뜻이 실현되려면 규제 개혁을 대기업 특혜와 동일시하는 ‘대기업 알레르기’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기업인의 기를 살리고 경제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면 고위 관료와 기업인의 만남은 많을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