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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무더위 속 태양광과 풍력은 애물단지…풍력 가동률 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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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난 1일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 재난종합상황실에서 담당 직원들이 전력 수급을 점검하고 있다. 전국이 40도를 오르내렸으나 대부분 휴가를 떠나는 기간이어서 비상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1일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 재난종합상황실에서 담당 직원들이 전력 수급을 점검하고 있다. 전국이 40도를 오르내렸으나 대부분 휴가를 떠나는 기간이어서 비상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오종찬]

서울의 수은주가 섭씨 39.6도까지 치솟은 지난 1일 오후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전력수요가 쭉쭉 올라 오후 4시 10분께 8200만㎾를 기록했다. 큰 공장들이 휴가로 가동을 중단해 전력 공급엔 여유가 있었다. 전력 예비율이 15%에 달했다. 하지만 전체 23기 가운데 정비 중인 5기를 뺀 원전 18기와 전국의 화력발전소는 거의 풀 가동했다. 반면 풍력 발전은 가동률이 13%에 그쳤다. 135만㎾를 만들 수 있는 설비에서 전기는 18만㎾만 나왔다. “여름엔 바람이 많이 불지 않기 때문”이란 게 관제센터 측의 설명이다. 전력수요가 급등하는 한여름에 풍력 발전은 맥을 못 추는 셈이다. 국내 신재생 에너지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은 태양광·풍력 자원 부족 국가 #신재생 확 늘리면 전기료 급등 우려 #정부는 “2030년까지 인상요인 11%” #연구기관 “20% 이상 요금인상 압박” #전 세계 원전 가동연장 투자 바람 #한국은 노후 원전 연장 불가 고집

태양광도 이 시간 가동률이 44%로 절반을 밑돌았다. 설비용량 253만㎾, 발전량은 112만㎾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인데도 그랬다. 태양광 발전기가 더위를 먹은 까닭이다. 태양광 패널은 섭씨 25도에서 전기를 가장 잘 만든다. 그보다 온도가 오르면 효율이 떨어진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태양광 패널은 아스팔트처럼 달궈져 60~70도까지 오르고, 발전량은 확 줄어든다. 그나마 지난 8월 1일은 날씨가 맑아 태양광 발전이 아주 잘 돌아간 날이었다. 날씨가 궂거나 겨울처럼 태양이 낮게 뜨면 태양광 발전량은 뚝 떨어진다. 그래서 국내 태양광 발전의 연평균 가동률은 14%에 불과하다. 풍력은 20%다.

한국은 발전에 쓸 수 있는 햇빛과 바람이 많이 모자란다. 이른바 ‘신재생 자원 빈국’이다. 미국 JP모건과 한전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단위 면적당 풍력 자원은 세계 최고 여건을 가진 나라의 30~40% 수준이다. 태양광은 10%가 채 안 된다. 단위면적당 수치가 이러니 전체 신재생 발전 자원량은 국토가 넓은 나라에 비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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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부는 2030년 전체 전기의 20%를 신재생으로 채우기로 했다. 지난해 말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내용이다. 원전과 석탄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과 가스 발전으로 메꾼다는 게 골자다. 부족한 바람과 햇빛으로 전기를 이만큼 생산하려면 방법은 하나다. 발전기를 많이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비가 많이 들어 발전단가가 오르고 전기요금이 뛴다. 날씨 때문에 태양광과 풍력이 동시에 돌아가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 예비용 가스 발전소 등도 많이 늘려 놓아야 한다. 태양광·풍력 발전소에 예비 발전소까지 겹 투자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요금 걱정이 없다”고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과 석탄을 신재생·가스로 대체해도 인상 요인은 2022년까지 5년간 1.3%, 2030년까지 13년간 10.9%에 불과하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지난해 말 8차 전력수급 계획을 확정하기 직전 국회에 제출한 내용이다. 산자부는 “태양광 패널의 가격 하락 등을 고려해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과거부터 신재생 확대의 영향을 계산해 온 에너지경제연구원(이하 에경연)은 다른 수치를 내놨다. 신재생 비율을 20%로 가져갈 경우, 2030년 발전단가는 20% 오를 것이라고 지난해 6월 발표했다. 연료비 상승 같은 요인은 빼고 단순히 원전·석탄과 신재생·가스 발전단가 차이만 고려한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별도의 추정을 통해 “인상요인이 10.9%”라고 국회에 최종 보고했다. 그 와중에 에경연 관계자가 에너지 관련 정부 위원회 소위원장에 내정됐다가 교체되는 해프닝을 빚었다.

에경연은 “실제 인상요인은 ‘20% +α’”라고 주장한다. 신재생 발전소를 많이 지으면 그만큼 송전선을 깔아야 하고, 또 ‘밸런싱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밸런싱 비용이란 가스 발전소 등을 비상대기 상태로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이다.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거나 바람이 멎으면 태양광·풍력 발전기가 멈추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가스 발전소가 즉각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비용이다. 익명을 원한 에경연 관계자는 “연료비 상승과 송전선로 구축, 밸런싱 비용에 연료비 상승까지 고려하면, 2030년 전체 전기요금 인상요인은 20%를 훨씬 웃돈다”라고 말했다.

2030년까지 갈 것도 없다. 벌써 ‘2022년까지 인상요인은 1.3%’라는 정부 예측이 흔들흔들한다. 지난해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한 뒤, 원전 발전량이 줄고 가스 발전이 늘면서 연료비가 많이 들어 한국전력은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1~3월에만 1조4400억원 영업적자를 냈다(단독재무제표 기준). 2분기 역시 큰 폭 적자가 예상된다.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자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생겼다는 의미다.

2000년 신재생에너지법을 마련해 신재생에너지를 크게 늘린 독일에서도 전기요금은 많이 올랐다. 한전경제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1㎾당 20.6센트에서 29.2센트로 42% 상승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특히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는다. 전기 때문에 원가가 올라 중기들의 주 무기인 가격경쟁력이 떨어져서다. 최저임금과 비슷하게 신재생 에너지도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 만든 8차 전력수급 계획은 7개월 만에 수요 예측도 빗나갔다.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8750만㎾로 예상했으나 이미 지난달 24일 9248만㎾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정부가 탈원전을 뒷받침하려고 전력 수요와 요금 인상요인을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탈원전과 관련해 정부는 확고한 원칙을 천명했다. 원전 6기를 새로 짓는 계획은 없던 일로 하고,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은 가동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다. 새로 원전을 잘 짓지 않는 선진국들도 기존 원전은 출력과 수명을 늘려 사용하고 있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세계 에너지 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7년 원전 수명 연장과 출력 확대에 전 세계는 70억 달러를 사용했다. 직전 5년간 투자액의 5배다. IEA는 또 기존 원전에 투자하는 것이 태양광·풍력보다 5배 더 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원전 가동을 연장하거나 출력을 늘리는 쪽이 같은 돈을 들여도 5배 전기를 더 생산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원전 47기가 설계 수명 40년을 넘어 연장 가동 중이다. 후쿠시마(福島) 사고 후 탈원전을 선언하고 원전 발전 비중을 1%대로 낮췄던 일본도 원전을 재가동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5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원전 비중을 20~22%로 맞추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25%)과 별 차이가 없다.

반면 한국 정부는 안전을 고려해 원전 설계수명이 지난 뒤 연장 가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정범진 교수는 “‘설계수명’은 원전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해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홈페이지에서 ‘첫 가동 기간을 40년으로 정한 것은 원전 기술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과 반독점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애초부터 40년보다 긴 기간 동안 원전을 돌릴 수 있도록 하면, 발전 단가가 낮은 원전 사업자가 시장을 독점해버릴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무조건 원전은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실정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며 안전성도 확보한 전력 공급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전력 계획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