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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파서 시작한 댄스, 이렇게 좋을줄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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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47) 내 사랑 스포츠댄스, 박명자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2017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사진 박명자]

2017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사진 박명자]

살다 보니 결혼 생활 40년이 훌쩍 지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가진 것 하나 없는 채로 사랑한다는 마음(지금 생각하니 그게 사랑인지 모험인지도 모르겠음) 하나로 시작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돛도 없는 허름한 나룻배에서 함께 지내겠다고 시작한 삶은 작은 바람만 불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녀야 했다.

지붕도 없는 나룻배라 비라도 오는 날에는 고스란히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 했다. 눈 내리는 겨울에는 시린 손을 비벼대며 부둥켜안고 서로의 체온으로 겨우 언 몸을 녹이며 살아냈다.

과천시 과천 고등학교 재직 시 찍은 사진. [사진 박명자]

과천시 과천 고등학교 재직 시 찍은 사진. [사진 박명자]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신산했던 그 시절 삶이 결코 고단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서지고 일그러진 나룻배 위에 누워서 밤하늘 별들을 바라보며 황홀했던 잊을 수 없는 기억. 아무런 방해도 없이 맨 얼굴로 거침없이 둥글게 떠올라 검은 바다 위를 밝혀주던 달을 바라보며 온몸을 떨며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이 40이 훨씬 넘어서자 나룻배는 더는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없을 만큼 부서지고 일그러져 육지 위에 정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육지 위의 삶은 결혼 초 바다 위에서 함께 부대끼고 깎여서 모난 곳들이 둥글어진 탓에 좀 더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2015년 8월 고양시 서정 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식을 했다. [사진 박명자]

2015년 8월 고양시 서정 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식을 했다. [사진 박명자]

그것도 잠시, 괜찮을 것 같았던 마흔 이후에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게 시작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회사에 매여 몸을 돌볼 겨를이 없이 지낸 남편은 관절염에 위장병, 과민성 대장염, 신경쇠약까지 걸려 성한 곳 하나 없어 약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나는 나대로 육아와 직장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허리디스크, 경추 추간판 파열, 갑상선암 등으로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1년 넘도록 병원생활을 하던 중 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로 ‘스포츠 댄스’를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스포츠댄스가 대중적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때라 조심스러웠지만,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남편과 함께 시작했다.

2015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춤 추는 모습이다. [사진 박명자]

2015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춤 추는 모습이다. [사진 박명자]

그 후로 지금까지 20여년을 한번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그 결과 만족할 만큼 멋지게 춤을 추지는 못하지만, 함께 매일 연습하고 단원들끼리 같이 발표도 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여기저기 아팠던 몸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건강해졌다. 구부정해 가던 어깨도 바르게 교정됐다.

몸이 건강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스포츠 댄스를 하면서 오직 남편과 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은 덤이다. 이런 시간이 모이다 보니 나이 먹으면서 덤덤해 하던 관계가 표정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를 알 정도로 서로에게 마음 써 주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찍었다. [사진 박명자]

2016년 부부 스포츠 댄스 추계 발표회에서 남편과 함께 찍었다. [사진 박명자]

남편이나 나나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탓에 순서도 잊어버리고 마음같이 멋진 동작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지금처럼 건강이 유지될 때까지 멋진 음악을 들으며 우아한 왈츠를 추며 살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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