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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서 화장품 팔아 재산 1조···한국 '은둔형 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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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부자’는 늘 관심 대상이다. 언론에서 주목받는 것을 꺼리는 그들은 기업 공식 행사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 이상일 일진글로벌 회장 / 2. 이상록 카버코리아 전 회장 / 3.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 4.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1. 이상일 일진글로벌 회장 / 2. 이상록 카버코리아 전 회장 / 3.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 4.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올해 포브스코리아 선정 ‘한국 50대 부자’에 깜짝 등장한 인물 중 하나가 이상록(45) 카버코리아 전 회장이다. 이상록 전 회장은 남대문시장 등에서 화장품 소매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99년 카버코리아를 설립하고 병·의원 등에 에스테틱 화장품을 납품하면서 회사는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인 성장은 2011년 출시한 에스테틱 화장품 브랜드 AHC의 ‘이보영 아이크림’이 홈쇼핑에서 대박을 치면서다. 카버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5201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은 2016년 베인캐피탈과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에 카버코리아 지분 35%를 2500억원에 처분한 데 이어 지난해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유니레버에 남은 지분 35%를 매각해 1조원에 달하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한발 늦게 중국에 진출해 사드(THAAD) 배치 여파가 크지 않아 2년 만에 매출이 4배 오르는 성장세를 맛보았지만 사실상 실적이 최고점을 찍어 매각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화장품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카버코리아 등 신흥국 화장품 브랜드가 저돌성과 참신함을 무기로 틈새를 적극 공략해왔다”고 평가했다.

이 전 회장의 신상은 외부에 알려진 게 없어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회사 측은 사진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언론 인터뷰 등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현장경영을 한 덕분에 더욱 세분화한 틈새 브랜드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회사 설립 초기 동업했던 형 이경록씨는 2006년 아미코스메틱을 설립하며 독립했다.

이 전 회장은 최근 새로운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2016년 9월 음반제작과 유통, 연예인 매니지먼트 업체인 세번걸이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데 이어 최근엔 쇼박스 임원을 영입하며 영화 투자배급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연초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맞은편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빌딩을 사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3.3㎡(1평)당 1억5041만원으로, 780억원에 거래됐다. 그는 계약 당일 곧바로 매매대금을 완납하면서 현금 동원력을 과시했다. 바로 옆 건물처럼 14~16층 규모로 재건축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업계에선 현금 부자인 이 전 대표가 부동산 투자로 안정적인 임대사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를 키워 자본시장에서 빠져나온 이후 빌딩에 돈을 묻어두는 방식은 신흥부자들의 투자 공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주가 폭등, M&A로 재산 불린 ‘미다스의 손'

올해 재산 가치 1조2846억원(32위)으로 순위에 재진입한 신동국(69) 한양정밀 회장도 일반인에겐 낯선 인물이다. 2016년 1조2607억원으로 31위에 오르며 깜짝 등장했던 신 회장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주가가 지난해 하락하면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올해 이들 주식이 100% 이상 오르면서 슈퍼리치 순위에 재등장했다. 그는 고향 선배인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조언에 따라 한미약품과 그 자회사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고 이들 주식이 폭등해 한때 지분평가액이 2조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운이 좋아’ 슈퍼리치가 된 것은 아니다. 임 회장과 경기 김포 통진종합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그는 오랜 기간 임 회장을 지원해왔다. 2000년 대 초 한미약품이 동신제약 지분을 두고 SK케미칼과 경쟁을 벌일 때 신 회장은 동신제약 지분을 한미약품 측에 넘겨 한미약품이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동아쏘시오그룹과 한미약품의 지분 경쟁에서도 신 회장은 동아쏘시오그룹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잠재적 우호군 역할을 했다. 한양정밀은 1985년 설립된 기계자동차 부품 제조사로, 2002년 말부터는 소형 굴삭기 조립 라인도 운영하고 있다. 신 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주식회사다.

재산 가치 1조1133억원으로 43위에 오른 김병주(56) MBK파트너스 회장도 좀처럼 대외석상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자산 규모 100억 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의 토종 사모펀드(PEF) 그룹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 특성상 언론 노출이나 대외활동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인 활동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해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하던 박태준 전 총리의 넷째 딸 박경아씨와 만나 결혼했다. 골드만삭스 뉴욕 본사, 홍콩 지사 등에서 근무한 뒤 살로몬스미스바니로 직장을 옮겼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의 40억 달러 규모 외평채 발행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칼라일 그룹에 입사해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모펀드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MBK파트너스로 독립한 김 회장은 대우정밀 매각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수 입찰에 참여했고 굵직한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둬 인수합병(M&A)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비용 절감 등 단기처방으로 기업 가치를 올려 되팔아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판도 있다.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기업들의 상장과 자본구조 재조정 등으로 거둔 차익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50위에 오른 이상일(81) 일진글로벌 회장도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는 한국의 50대 부자 중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최고령이다. 1978년 설립된 일진그룹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일진, 일진글로벌, 일진 베어링 등 4개 계열사와 중국, 인도 등지에 해외 사업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자동차용 휠 베어링 분야에서 품질 및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상학과 57학번인 이상일 회장은 모교에 20억원을 기부해 지난해 ‘고대 스타트업 스테이션’을 세우기도 했다.

일찌감치 경영 일선 떠난 오너 일가

5.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 6.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5.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 6.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순위에 든 인물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최기원 SK나눔행복재단 이사장도 2017년 1조2582억원에서 올해 1조4058억원으로 재산이 늘었다. 지분 7.46%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는 SK의 주가가 뛴 덕분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여동생으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홍라희 전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과 함께 국내 여성 부호 ‘톱5’를 이루고 있다.

재계에선 “최태원 회장이 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최 이사장이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2006년 9월 설립된 SK행복나눔재단은 SK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재단이다. 그는 2009년 2월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SK그룹 내 계열사별로 출자된 자금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SK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 6월 ‘2017 사회적기업육성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시상식에 참석한 최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사회혁신가와 사회적 기업 생태계 발전에 행복나눔재단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부자 순위 22위의 이호진(57) 태광그룹 전 회장은 2012년 횡령과 배임으로 회사에 1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수감생활 이전이나 이후나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언론 인터뷰를 사절한 것은 물론 외부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회장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하는 직원도 많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태광의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을 진행해 기업을 탈바꿈시켰다.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 등에 진출해 섬유산업 위주의 주력 업종에서 벗어난 것이다. 1997년 설립한 종합유선방송(MSO) 사업체인 ‘티브로드’를 지역케이블TV 20개를 거느린 업체로 키웠다.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의 자회사를 보유하면서 종합 금융서비스 회사로 성장시켰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회장은 3세 경영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한창이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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