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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보면 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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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41) "인생은 마라톤이다", 강번석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2016년 중앙일보대회 달리는 모습. [사진 강번석]

2016년 중앙일보대회 달리는 모습. [사진 강번석]

중앙일보 마라톤을 달린 2000년 가을 마라톤을 오래 달릴 거라고 작심하지 않았다. 직장과 가정, 집안 장손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힘든 나날을 보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장난감 병정처럼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다섯 바퀴도 못 돌아 힘들고 지치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신발 안 모래알갱이를 털어 낼 때 스트레스도 함께 떨궜다.

커다란 포부를 앞세우기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 달리기로 건강을 회복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중압감은 뇌 속의 해마라는 부위와 세포 수를 줄여 기억 능력을 떨어뜨리고, 비합리적인 오기는 허탈한 좌절감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2018년 필자가 아들과 함께 동반으로 달리는 모습. [사진 강번석]

2018년 필자가 아들과 함께 동반으로 달리는 모습. [사진 강번석]

하프코스를(2000년~2001년) 연이어 달리고 몸이 마라톤에 적응될 무렵 풀코스(2002년 ~2017년)를 연이어 16회 달릴 수 있었다. 마라톤은 지구력 운동으로 끈기와 반복, 집요함이 동반돼야 한다. 재치보다는 끈기가 필요하고, 총명하기보다는 우둔해야 할 수 있었다.

달리는 동안 따가운 햇볕이 비추면 볼록렌즈로 태양광을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 종이를 태우듯 집중하고 몰입(沒入)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달릴 때 몸과 마음이 다 아파봐서 일상이 아프지 않다. 마라톤으로 체력을 키워 70대에 들어섰다.

2018년 5월 노원마라톤대회에 3대가 출전. [사진 강번석]

2018년 5월 노원마라톤대회에 3대가 출전. [사진 강번석]

마라톤대회의 주자들은 청년이 앞에서 끌어주고, 중·장년이 뒤에서 밀어주며 너와 나 하나가 된다. 청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달리다 보면 내가 나이가 들어도 청년에게 기대지 않으며, 높은 연금에 탐욕스레 집착하는 볼썽사나운 기성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고 흔히들 말하곤 한다. 마라톤을 그냥 불러보아서는 마라톤을 모른다. 나는 함께 달리고 싶은 아들과 사위, 손자와 함께 3대가 달렸다. 손주가 아빠보다 더 잘 달린다. 아빠가 게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2018년 11살 손자가 역주하는 모습. [사진 강번석]

2018년 11살 손자가 역주하는 모습. [사진 강번석]

마라톤은 뼈로 뭉쳐진 발을 탄성 좋은 스프링처럼 작용하게 하여 내가 나를 인증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인증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인증하는 것이 더 강력하다. 아들, 사위, 손자 모두가 마라톤으로 느낀 것들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인생을 마라톤처럼 잘 달리기를 바란다. 마라톤은 말이 필요 없다. 달려봐야 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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