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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 인감 대신 행주 들고, 젊은이처럼 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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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40) 금융기관 지점장에서 갈빗집 웨이터로, 김석조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현재 근무하고 있는 숯불구이 갈빗집에서 손님들이 먹고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김석조]

현재 근무하고 있는 숯불구이 갈빗집에서 손님들이 먹고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김석조]

저는 1981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들어간 재경부 산하 국책금융기관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담보력 보완을 위해 신용조사 신용평가 대출보증 심사 업무 등을 30년 넘게 담당해 오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 60 넘어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직장인 갈빗집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생활한 지도 어언 두 달이 넘어갑니다. 말이 웨이터고 스텝이지 사실은 갈빗집 마당쇠입니다. 숯불구이 갈빗집이니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숯불 화로 청소는 기본이고 물김치와 수정과를 비롯한 각종 식자재 운반, 손님들이 먹고 간 후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그릇과 컵, 수저 등을 치우는 퇴식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숯과 석쇠를 안치해 놓고 모든 세팅을 완료하면 어느새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흰 유니폼은 더러워져 있죠. 평상시 약간의 결벽증이 있던 제가 손님이 씹다 버린 게 껍데기와 갈비뼈, 김치 깍두기, 잡채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잡아 짬밥 통에 넣는 저 자신을 바라보노라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식당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테이블당 회전율을 최대한 높여야 하므로 느긋하게 퇴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융기관 지점장 시절 회사 사무실에서 눈을 감고 한 컷 찍었다. [사진 김석조]

금융기관 지점장 시절 회사 사무실에서 눈을 감고 한 컷 찍었다. [사진 김석조]

그동안 편하게 살다가 뒤늦게 호된 시집살이를 한다고나 할까요? 식당일이 힘들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10년, 20년 넘게 식당 일을 해왔다는 동료 여직원들이 존경스럽더군요. 학창시절 어린 마음에 위인전을 보면 신문 배달, 우유배달, 구두닦이 얘기가 많이 나와 부러웠는데 뒤늦게나마 경험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저분한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또 닦는 것이 마치 제 마음을 깨끗이 닦아내고 비워내는 수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에 내심 뿌듯한 마음도 생겼지요. 이제껏 책상에 앉아서 업무만 보던 제가 이 일을 통해 온몸으로 부딪혀 얻어가는 생생한 삶의 역동성은 32년간의 공직생활 업무 때와는 또 다른 희열과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네 꿈을 펼쳐라!!”
우리 집 가훈입니다. 인생 2막을 연 지금, 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화이트칼라 출신들도 직업의 경계를 지우고 새 희망을 만들어가는 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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