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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죽음 안타깝지만 오세훈법 때문이라는 건 억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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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호 08면

‘오세훈법’의 주역인 오세훈 고려대 석좌교수가 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관련 법 개정 당시에 관해 말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오세훈법’의 주역인 오세훈 고려대 석좌교수가 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관련 법 개정 당시에 관해 말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노회찬은 오세훈법에 무너졌다.”

2004년 법개정 주도한 오세훈 #정치 후원금 모금 원내·외 차별 #개선 시도 반대한 건 현역의원들 #핵심은 기업·단체 돈 안 받는 것 #원내·외 차별은 지구당 폐지서 비롯 #개선요구 있었지만 14년간 손 안 대 #정치개혁 큰 틀 바뀐 게 없어 아쉬움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4000만원의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나오는 주장이다. 원외 인사들이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모금할 길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봐서다. 노 의원의 자금 수수 시점이 원외 시절이었던 2016년 3월인 데서 기인했다. 관련법 개정 요구도 있다.

논란의 법은 법명에서 알 수 있듯, 2004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오세훈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개인 후원 한도와 국회의원 등의 모금 한도를 제한했다. <표 참조>

오세훈법 주요내용

오세훈법 주요내용

당사자인 오 교수는 이 같은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노 의원의 황망한 죽음은 안타깝지만 오세훈법이 원내·외를 차별하는 법으로 비치는 건 억울하다”며 “여러 번 논의가 제기됐는데도 (개정에) 반대했던 건 현역 의원들”이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와의 문답을 통해 쟁점을 정리했다.

오세훈법이 논란이다.
“며칠 전 실소했다.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오세훈도 못 지키는 오세훈법 바뀌어야 한다’고 하더라. 요지가 원내와 원외의 균형인 듯하다. 이번에 노 의원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던진 화두가 ‘청렴한 사람이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란 감성적 판단을 한 듯하다. ‘총선 한 달 전에 돈 쓸 일이 참 많았을 텐데 돈을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돈을 모을 수 있게 정치를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자’는 게 요지더라. 그런 주장이라면 반대 안 한다. 그런데 마치 오세훈법이 원내와 원외를 후원금 측면에서 차별하는 법으로 비치는 건 억울하다.”

사실 노 의원이 “원외여서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없었다”는 주장은 절반만 진실이다. 노 의원은 2016년 2월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이후엔 적법하게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다. 돈 수수 시점엔 이미 합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 의미다. 단 예비후보 등록(선거일로부터 120일 이전) 전이라면 받아선 안 된다.

여기저기 기업인 만나고 일은 언제 하나 고민

그렇다면 법안의 요체는 뭔가.
“기업의 돈을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자연인으로서 기업인이 돈 내는 건 누가 말리나. 기업 명의로 돈을 내는 건 막자, 그런데 기업만 금할 수 없으니 법인·단체를 막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단체나 노조까지 포함된 것이다. 당시 ‘차떼기’라고 표현될 정도로 엄청난 돈이 기업으로부터 대선주자 캠프로 들어간 게 국민에게 충격을 줬었다. 사실 밑바닥엔 초선의원 오세훈의 문제의식이랄까 그런 것도 있었다. 밤이면 기업인들 만나서 친분을 쌓는 게 후원금을 걷는 지름길인데 그게 하루 이틀이지 이 기업인 만나고 저 기업인 만나고 일은 언제 하고 지역구 관리는 언제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정경유착이 거기로부터 시작된다는 문제의식과 정치에 대한 혐오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불출마선언을 했더니 정치개혁특위 간사 자리가 왔다. 그때 결심한 게 이것 하나는 바꿔놓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박용성 당시 대한상의 회장 찾아와 항의도

당시 법 개정을 통해 법인·단체의 후원은 막고, 개인 후원 한도를 500만원으로 줄였다.
“돈을 받았다고 채무감이 들거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은 없겠다고 설정한 한도가 500만원이었다. 당시 가장 반발한 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다. 박용성 당시 두산중공업 회장이었는데 재계 대표로 찾아와 항의했다. ‘이제 기업의 의견을 정치권에 반영시키기 힘들어진다.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루트가 차단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나중엔 ‘민주당을 찾아가서 통과 안 되도록, 돼도 총선 후 돌려놓겠다’고도 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을 보고 경악했는데 민주당이 반대하더라. 나중 언론에서 민주당을 비판하고 나서야 법안이 통과됐다.”
노 의원 비극의 원인으로 원내·외 차별을 거론한다.
“문제가 되고 나서 심각성을 알게 됐다. 현역의원들이 동의하면 전혀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러 번 논의가 제기됐을 때 반대한 건 현역의원들이다.”
현역이 반대했다니.
“원외도 후원금을 걷게 해주자면 아무도 동의를 안 한다는 것이다. 오세훈법이라고 독박을 쓰지만 (현역과 원외의) 이해관계다.”

오세훈법엔 원내·외의 차별이 명시적으로 돼 있지 않다. 결국 지구당 폐지에 따른 여파였다. 이전까진 지구당도 후원회를 둘 수 있었다. 지구당 위원장이라면 원외여도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04년 지구당이 돈 선거의 주범이란 인식이 공유되면서 폐지로 결론 났다. 여기에 기여한 인물 중 한 명이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2003년 3월 최초로 지구당 위원장제 폐지를 주장하며 지구당 위원장직을 내던졌었다.

지구당 폐지에 따른 원내·외 차별 문제는 2004년 법 개정 직후 제기됐다. 2005년 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현직의원과 의원이 아닌 당협위원장 간 불공정 문제가 커졌다”(강원택 서울대 교수)며 보완 요구가 있었다. 이후에도 줄곧 유사한 주장이 있었으나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 교수가 “현역의원들이 반대했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법 개정 요구가 나오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회사와 노조가 후원할 수 있도록 바꾸고 싶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지금 흐름으론 불가능할 것이다. 차선책으로 원내·외 형평성을 얘기하면서 모금 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아닌가 싶다. 일부 원외 생활을 고달프게 했던 사람이, 원내 들어와 있는 사람은 후원금 쓰는데 원외인 자기들은 내 돈을 들여야 하고 늘 불안하고 그러니까 일정 균형을 맞춰주자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정치자금의 입구보단 출구, 즉 지출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더 강화해야 하는 건 지출이다. 들어오는 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조여 놓았는데, 이젠 쓰는 걸 점점 투명하게 해야 한다. 사회가 그렇게 가고 있지 않나. 국회라고 무풍지대는 아니다. 헛돈이 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게 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 오세훈법이 만들어진 지 14년이 지났다. 정치개혁에 관한 한 2004년 이후 큰 틀에서 바뀐 건 없다. 정치·언론 등 환경이 바뀌었는데 정당 조직은 그대로다. 양 거대정당도 그렇고 군소정당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돌이켜보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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