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갑다 입추! 가을바람을 가져와다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성태원의 날씨이야기(26)

가을은 하늘 저편에서는 상쾌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래를 펴기 시작할 때다. [중앙포토]

가을은 하늘 저편에서는 상쾌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래를 펴기 시작할 때다. [중앙포토]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동요 ‘가을’(백남석 작사·현제명 작곡)의 첫 소절이다. 입추(立秋·7일·화)를 사흘 앞두고 문득 이 노래가 왜 떠올랐을까. 말할 것도 없이 유난스런 올 폭염 때문이다. 으레 입추는 폭염 절정기에 맞는다지만, 역대 급 폭염 속에서 맞다 보니 ‘가을바람’이 더없이 그리워 진 거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눈앞에 다가왔으니 “‘살인적인 폭염’도 이젠 한풀 꺾이겠지”라는 꿈을 꿀만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말복(16일)이 끼어 있는 이달 중순까지도 폭염이 이어질 거란 얘기가 돌고 있어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도 입추는 입추다. 폭염 절정기지만 가을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절기가 바로 입추 아닌가. 폭염과 열대야로 지치고 때로는 태풍 걱정도 해야 하지만 하늘 저편에서는 상쾌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래를 펴기 시작할 때라는 얘기다.

입추는 6개 가을 절기 중 첫 번째다. 앞으로 보름 간격으로 입추~처서(處暑·8월 23일)~백로(白露·9월 8일)~추분(秋分·9월 23일)~한로(寒露·10월 8일)~상강(霜降·10월 23일)을 거치며 가을이 깊어 간다.

조상들은 입추 즈음이면 가을 채비를 시작했고 주곡인 벼농사가 잘 되길 빌었다. [중앙포토]

조상들은 입추 즈음이면 가을 채비를 시작했고 주곡인 벼농사가 잘 되길 빌었다. [중앙포토]

조상들은 입추 즈음이면 가을 채비를 시작했다. 특히 무, 배추를 심어 겨울 김장에 대비했다. 김매기가 끝나 모처럼 농촌이 한가해지는 때이기도 했다. 간혹 접하는 서늘한 바람과 귀뚜라미 소리를 위로 삼아 남은 무더위를 견뎌 냈다.

그러면서 주곡인 벼농사가 잘 되길 빌었다. “귀 밝은 개 벼 자라는 소리 듣는다.” 입추 즈음엔 이런 익살스러운 속담을 많이 회자했다. 무더위에 벼가 얼마나 잘 자랐으면 개가 그 소리를 들을 정도였을까.

절기상 우리나라 가을은 ‘입추’(8월 7~8일)에 시작한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추분(秋分, 9월 22~23일)에 시작한다고 본다. 달력 기준으로는 9월부터를 가을로 친다. 기상학적으로는 또 다르다.

일평균기온이 20℃ 미만으로 내려가 10일간 유지되면 가을이 시작한 것으로 본다. 최근 30년간 가을이 시작한 평균 날짜는 서울 9월 23일, 부산 10월 3일이다. 기상학적으로는 서울이 부산보다 열흘 정도 빨리 가을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최근 10년간 서울지역의 기상 자료를 분석해 봐도 입추는 대개 폭염 속에서 맞았다. 입추 때 서울지역 일평균기온은 26.5℃, 일 최고기온은 30.6℃였다. 기상학적으로 한여름(일평균 25℃ 이상, 일 최고 30℃ 이상)에 해당한다.

1일 기상청 중기(10일) 예보에 따르면 오는 11일(토)까지 전국에 대체로 구름이 조금 낀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온은 아침 25℃~한낮 35℃ 안팎을 나타내 폭염 특보와 열대야가 계속될 전망이다. 입추 당일에도 서울지역은 구름이 조금 낀 가운데 아침 26℃~한낮 35℃로 열대야와 폭염을 보일 것으로 예보됐다.

올여름 더위는 숱한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역대 1위를 기록했던 1994년 더위를 넘보고 있다. [중앙포토]

올여름 더위는 숱한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역대 1위를 기록했던 1994년 더위를 넘보고 있다. [중앙포토]

올여름 더위는 숱한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역대 1위를 기록했던 1994년 더위를 넘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7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45년 동안 7월 폭염 일수(일 최고기온 33℃ 이상 일수) 최상위권은 1994년 18.3일, 2018년 15.5일, 1978년 10.5일 순이었다.

7월의 열대야 일수는 1994년 8.9일, 2018년 7.8일, 2013년 6.6일 순이었다. 올해 7월의 폭염과 열대야 일수가 모두 일단 역대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8월 기록까지 봐야 최종 순위를 알 수 있어 주목된다.

이달 1일 서울 최고기온이 1907년 기상관측 시작 이래 111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점도 눈에 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은 39.6℃였다. 1994년 7월 24일 38.4℃가 지금까지 최고 기온이었는데 24년 만에 그 기록이 깨진 것이다.

지난 1일 전국 최고기온 기록도 깨졌다. 강원도 홍천이 이날 최고기온 41℃를 기록한 것. 1942년 8월 1일 대구의 최고기온 40℃가 역대 1위였는데 76년 만에 그 순위가 바뀌고 말았다.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 질환 환자와 사망자 수도 기록을 경신 중이다. 1일 질병 본부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5월 20일부터 7월 31일까지 발생한 온열 질환자는 모두 2천355명이었다. 작년의 약 2.5배 규모로 지난해 여름(5월 29일~9월 8일) 발생 건수 1천574명을 이미 넘어섰다.

사망자는 29명으로 2011년 감시체계 운영 이래 최대다. 이 통계는 전국 500여개 응급실로부터 수집한 온열 질환자 진료 현황을 기초로 작성한 것이다. 해마다 8월 초·중순에 온열 질환자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입추 이후에도 예방에 바짝 신경을 쓰는 게 좋겠다.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 질환 예방 수칙. [사진 질병관리본부]

열사병·열탈진 등 온열 질환 예방 수칙. [사진 질병관리본부]

늦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폭염 대응조치도 달라졌다. 살인적인 폭염을 재난(자연재해)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보인다. 정부는 올 폭염 기간 중 전기료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모처럼 여야 한목소리로 폭염과 혹한을 지진·홍수·태풍처럼 재난에 포함하는 법안 마련에 나섰다.

성태원 더스쿠프 객원기자 iexlover@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