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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사절, 75세까지 바쁘게 뛰려 오늘도 공부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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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33) 은행지점장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최철영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뜨니 내 주위엔 아무도 없다. 텅 빈 공간은 정말 싸늘하기만 하고 주위의 시선은 온통 달갑지 않은 눈초리로만 의식될 뿐이다. 지난 직장생활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바쁘게 출근하던 생활들이 아주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종일 집에만 처박혀 있는 게 어쩐지 여간 어색하지 않다.

2018년 1월 경기도 화성시 S주식회사 부사장 재직 시 사무실에서 업무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면서. [사진 최철영]

2018년 1월 경기도 화성시 S주식회사 부사장 재직 시 사무실에서 업무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면서. [사진 최철영]

누구에게 나를 알릴 그 흔해 빠진 명함조차 한장 지니지 못하고 내 몸뚱어리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세상에 내팽개쳐져 버려진 초라한 내 몰골이 너무나 참혹하여 거울에조차 내 얼굴을 비쳐 보기가 싫어졌다.

지난 29년간 직장(은행)생활의 끝남과 동시에 백수라는 이름으로 극복할 수 없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 몇 개월을 방안에 처박혀 지내다가 이젠 사람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은행 연합회 취업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100만원 짜리 월급쟁이 알선도 힘들다고 하면서 택시기사를 알아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라는 말에 크게 실망했다. 패잔병의 발걸음은 그 어디에도 갈 데도 그리고 마음을 기댈 데조차 없었다.

2010년 인천 남동공단 S산업 재직 시 전국 벤처인 대회에서 인천벤처협회장으로부터 기업경영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사진 최철영]

2010년 인천 남동공단 S산업 재직 시 전국 벤처인 대회에서 인천벤처협회장으로부터 기업경영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사진 최철영]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도권 이남에 소재한 중소기업 100군데에 자기소개서를 등기로 발송했다. 그러나 발송한지 1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속으로는 깊은 실망감에 빠져있었는데 2달이 채 지나기 전 세 군데 기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 군데 중 두 군데 기업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장난삼아 나를 만나자는 사람들이었다.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한 기업에 운 좋게 합격했고 2년간 근무했다. 나는 다시 경남 창원공단의 모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의 전문경영인으로 1년을 지내다가 당시 총무처가 모집하는 정부의 개방형 직위 공무원(4급 상당) 시험에 10여 군데나 응시하여 필기시험은 모두 통과하였지만 면접에서 연거푸 탈락하여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2009년 인천 남동공단 S제조업체에서 전무이사로 근무하면서 사무실에서 업무 중인 사진이다. [사진 최철영]

2009년 인천 남동공단 S제조업체에서 전무이사로 근무하면서 사무실에서 업무 중인 사진이다. [사진 최철영]

이후 다시 경기도 화성의 어느 공장에서 또 2년, 지난 2008년 11월 다시 이곳 인천의 어느 중소기업에서 그리고 2011년 경기도 화성에서 현재 이 시간까지 지금도 역동적인 삶의 나래를 펼치고 살면서 백수라는 이름의 딱지를 떼고 사는 데 만족한다.

지금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영어방송을 청취하고 주말이면 세무 관련, 노동법, 회사경영에 대한 책과 씨름한다. 혹시나 20~30대 젊은 세대에 비해서 내 실력과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질까 두려워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75세 이전에는 절대 다시는 백수가 안 되리라고 굳게 각오를 다지면서 오늘도 경기도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 하루를 열고 또 그 하루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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