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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추진한 정부, 원전 수출 차질에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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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국 리버풀 북쪽 무어사이드 지역에 3기의 원전을 짓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조감도.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한국의 두 번째 원전 수출이다. [사진 뉴젠]

영국 리버풀 북쪽 무어사이드 지역에 3기의 원전을 짓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조감도.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한국의 두 번째 원전 수출이다. [사진 뉴젠]

영국에 원전을 수출하려던 정부의 구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도시바가 한국전력에 뉴젠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한다고 통보하면서다. 영국은 약 150억 파운드(약 22조원)를 투입해 리버풀 북쪽 무어사이드 지역에 3기의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뉴젠이 사업자다.

한전 22조 영국 원전사업 제동 #한국형 원전 선진국 수출 1호 #원전 수익구조 놓고 협상 길어져 #사업 무산 아니지만 지연 불가피 #“도시바, 돈 더 받으려는 의도”

당초 한전과 도시바가 합의한 우선협상 기간은 6월 15일이었다. 최근 이를 한 차례 연장(1개월)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결별에 이르렀다. 타 업체와 협상 기회를 갖겠다는 게 도시바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규모가 커 한전을 대신할 파트너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매각 대금을 높이고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이 뉴젠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4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실제로 도시바는 앞으로도 한전을 최우선협상대상자로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의 실질적 지위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시간이 조금 지연된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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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가 구체적인 사업 방식을 놓고 영국 정부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산업부 협상단은 지난달 30일 런던에서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관계자를 만나 무어사이드 프로젝트의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최근 영국 정부의 입장 변화와 관련이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건설한 뒤 대금을 받으면 끝나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다르다.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원전을 지은 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형태다.

무어사이드

무어사이드

당초 영국 정부는 발전차액정산제도(CfD)를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RAB 모델’을 적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CfD는 사업자가 건설을 책임지고 30~40년간 발전요금을 받아 회수하는 방식이다. 금융 비용을 줄이고 발전 가격을 제대로 받는 게 관건이다. 이와 달리 RAB는 정부가 건설비를 지원하고 이후 운영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CfD에 비해 수익성은 낮을 수 있지만 영국 정부의 보증이 있어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며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도시바 등과 RAB 모델 적용 시 수익성과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한 공동 타당성 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결과에 따라 사업에 참여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업이 아예 중단될 위기는 아니라지만 산업부는 당혹스러운 눈치다. 정부는 그동안 국내에선 탈원전을 추진해도 원전 수출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한국 원전의 첫 선진국 진출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이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탈원전과 원전 수출이 양립 가능하다는 구상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서유진·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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