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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지리산이냐, 수도산이냐"…사고뭉치 반달곰의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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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이 간다] 반달가슴곰 1번지 종복원기술원 

길이 161㎝, 체중 110㎏.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재활 중인 반달가슴곰 'KM-53'이다. ‘Korea Male’의 약자인 KM은 ‘한국산 수컷 곰’, 53은 곰의 관리번호를 뜻한다. 지난 5월 5일, 지리산을 떠나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시속 100km로 달리던 고속버스 범퍼에 부딪혀 왼쪽 앞다리가 으스러졌다. 곰의 사고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15년째 진행 중인 대한민국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방향을 ‘개체 수 보전’에서 ‘서식지 관리’로 바꾸게 한 주인공의 변고였다. 그 후 석 달, KM-53은 어떻게 됐을까.

지리산 세 번 탈출 교통사고 곰 #수술 앞다리 건강, 재방사 기로 #세계 첫 인공수정 성공 비결은 #새벽 4시 암컷 첫 오줌 받아 #호르몬 분석, 수정 적기 단서로 #개체→서식지 관리 전환 바람직 #난립한 연구·관리체계 정비해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달 25일 지리산 자락 화엄골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을 찾았다. 기술원은 KTX 구례구역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2004년부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을 이끌어온 곳이다. 엄청난 폭염에도 40여 명의 연구원은 분주했다. 오전 8시40분. 연구원들이 모니터링·서식지관리·트랩운영팀으로 조를 짜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리산에서 서식하는 곰 56마리 중 귀에 발신기 신호기가 달려 위치추적이 가능한 개체는 22마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매일 현장을 돌며 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트랩을 놓고 곰을 생포해 발신기를 달거나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송동주 종복원기술원장은 "산에 들어가면 왕복 10㎞는 걸어야 한다"며 "요즘은 곰들이 폭염을 피하려 계곡으로 이동하는 일이 잦아 안전관리에 더 신경 쓴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지리산을 벗어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반달곰이 복합골절수술을 받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지난 5월 지리산을 벗어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반달곰이 복합골절수술을 받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세 번이나 지리산을 탈출했던 KM-53은 어디에 있을까. 김정진 기술팀장은 "건물 뒤 케이지(cage)에 있다"고 했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딱딱~’ 소리가 났다. 혀를 차는 것 같았다. 김 팀장은 “곰의 경계음”이라고 했다. 뭔가에 위협당한다고 생각하면 소리로 즉각 야성적 반응을 보인다는 거였다. 출입이 통제된 케이지는 검은 차단막에 가려져 있었다. 먹이를 준비하던 박영일 연구원은 "누구도 곰을 직접 보지는 못한다"고 했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케이지와 자연순치장을 드나드는 모습만 관찰하며 자유롭게 재활을 하도록 놔둔다는 것이다. 순치장이란 케이지와 연결된 자연 공간이다. 먹이는 일주일에 두 번 10㎏씩 준다. 밤과 도토리가 주식이다. 증식용 곰은 수박 화채나 얼음, 포도·복숭아 같은 제철 과일 호사를 누리지만 KM-53에겐 언감생심이다. 인공 먹이에 길들면 야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 곰의 운명은 기구하다. 2015년 1월 기술원에서 태어나 그해 10월 지리산에 방사됐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지리산에서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1317m)에서 잡혔다. 두 달 뒤 다시 풀어줬는데 또 탈출하다 포획됐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탈출왕 콜럼버스'란 별명이 붙었다. 곰은 3~4살 때 사춘기가 된다. 짝을 찾으려 경쟁도 해야 한다. 그런데 녀석에게 지리산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혈기왕성한 사춘기 수컷은 다시 수도산으로 가려다 고속버스에 치였다. 사고는 환경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이 '곰과의 공존선언'을 선포(5월 4일)한 바로 다음 날 발생했다. 서식지 관리에 대한 일종의 경고음 같았다.

10시간 넘게 복합골절 수술을 받은 왼쪽 앞다리는 어떻게 됐을까. 문광선 남부복원센터장과 CCTV를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오전 9시. 곰이 벌렁 대자로 눕는다. 세상 편한 자세였다. 1시간 뒤 순치장으로 나가더니 한참 있다 들어온다. 먹이를 먹고 온 거였다. 다리 상태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후 2시쯤 두 다리를 쭉 올리더니 케이지에 매달렸다. 다리가 멀쩡했다. 걸음도 자연스러웠다. 곰을 수술했던 정 의료센터장은 "수술 부위가 99% 완쾌됐다. 곧 방사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외견상으론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사고뭉치의 3전4기가  머지않은 것이다.

정동혁(왼쪽)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이 영상을 보며 스탭들에게 건강을 되찾은 곰의 현재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정동혁(왼쪽)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이 영상을 보며 스탭들에게 건강을 되찾은 곰의 현재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종복원기술원은 올 2월 엄청난 경사를 맞았다. 세계 최초로 인공수정 반달가슴곰을 얻은 것이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 일을 해낸 야생동물의료센터는 기술원 뒤편에 있었다. 임상병리실·번식연구실·방사선실·수술실을 갖춰 병원 같았다. 의료센터 업무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곰은 발정기가 6~8월이어서 한여름이 피크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센터 연구원 6명이 교대로 매일 새벽 4시부터 곰의 첫 오줌을 받아낸다. 야성을 잃었거나 부상을 당해 자연 방사가 어려워진 암컷 네 마리가 대상이다. 성호르몬이 농축된 첫 오줌이 배란기 변화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이안나 연구원은 "곰들이 언제 소변을 볼지 몰라 졸 수도 없다"며 "동시에 일을 보면 번개처럼 움직인다"며 웃었다.

연구진은 곰의 호르몬 변화를 체크해 발정 시그널이 잡히면 생식기와 상피세포, 혈액,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인공수정이 적합한 상태인지를 판단한다. 정동혁(수의사) 의료센터장은 "적합 판정이 나면 곧바로 수컷을 마취해 정액을 채취한 뒤 암컷에 주입한다"며 "이런 방법을 도입하는 데는 일자별 오줌 데이터가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에도 이런 방법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 올 2월 암컷 곰이 태어난 것이다.

곰의 번식 방법은 독특하다. 암컷이 몸속에 수정란을 간직하다 동면 전 자궁에 '지연 착상'하고, 동면 중인 1~2월에 새끼를 낳는다. 이번 여름에도 여러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 착상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유다. 한 번 인공수정한 암컷 곰에는 다시 전혀 다른 정액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해야 한다. 정 센터장은 " 곰도 좋아하는 상대하고만 교배를 하기 때문에 똑같은 핏줄이 태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인공수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야생동물의료센터 연구원들이 인공수정을 위해 암컷 곰을 마취시킨 뒤 검사를 하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연구원들이 인공수정을 위해 암컷 곰을 마취시킨 뒤 검사를 하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기술원은 인공수정 곰과 KM-53의 방사에 승부를 건다. 두 곰이 자연의 품에 안긴다면 종 다양성과 서식지 확대의 분수령이 될 수 있어서다. 출생 당시 300g이었던 인공수정 1호(암컷)는 현재 16㎏으로 체중이 불었다. 지난달 27일 어미 곁을 떠나 해발 800m의 지리산 문수골 자연적응훈련장으로 옮겨졌다. 거기서 또래 수컷 곰과 야생 적응에 성공하면 방사한다.

대체 곰이 뭐길래 이처럼 정성을 쏟는 걸까. 송동주 원장은 “백두대간 생태계 복원과 인간과의 공존 모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활 곰과 인공수정 곰을 방사하는 건 세계 동물사에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지리산 방사 시기를 신중히 결정하겠단다.

왜 곰에 집착하나.
“단군신화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와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곰은 소화율이 30%다. 왕성한 먹이활동과 배설을 통해 산포한 씨앗의 발아율이 높아 생태계의 우산종(Umbrella species) 역할을 한다. 단순 복원이 아니라 동물과 인간 공존의 인디케이터다.”
인공수정도 하지만 곰을 계속 수입하고 있다.
“올해도 서너 마리 방사한다. 러시아산의 경우 한 마리에 1000만~1500만원 한다. 2004년 복원을 시작할 초창기에는 400만원이었는데 원종 확보가 어려워지자 값이 올랐다.”
두 마리 곰은 언제 방사하나.  
“KM-53과 인공수정 1호는 남다르다. 곰 복원 정책을 개체 수 관리에서 종 다양성과 서식지 관리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방사 시기와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서울대 이항 수의학과 교수는 "방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자연 적응이 어렵다. 재차 방사할 때는 포획한 자리에 놓아주는 게 원칙이다. 당연히 수도산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 우두성 회장도 "인공수정 1호 곰 서식지를 지리산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며 "지리산을 '곰의 감옥'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수도산·덕유산·속리산·태백산까지 서식지 확대가 가능할까. 기술원의 시어머니인 환경부는 그런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2004년부터 반달곰 복원 사업을 본격화한 이후 3세대까지 태어나 개체 수 50마리 달성 목표(2020년)를 2년이나 앞당겼는데도 말이다. 현재 56마리인 곰의 개체 수와 수명(20~25년)을 고려하면 수년 내에 지리산 수용한계(78마리)를 넘어서고, 10년 후에는 100마리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녹색연합 배제선 자연생태팀장은 "지금은 인위적 증식보다는 서식지 확충과 안전사고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컨트롤타워부터 정립하라"고 주문했다. 환경부 산하에 종복원기술원(구례)과 국립생물자원관(인천),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영양)가 난립해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그런 점을 알면서도 교통정리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장과 행정이 따로 노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기곰과 어미 모습 [종복원기술원]

세계 최초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기곰과 어미 모습 [종복원기술원]

오후 5시 30분, 종복원기술원이 다시 분주해졌다. 현장팀이 복귀해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했다. 곰의 이동 경로와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는 일인데 절반 이상은 추적하지 못했다. 이런 원시적인 시스템으로 반달가슴곰의 집을 백두대간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사람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까. 자연 방사 운명 앞에 선 인공수정 1호 곰과 KM-53은 그에 대한 답을 묻고 있다. 인간과 곰의 공존,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과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