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드릭 라마가 보여준 위엄 "함께 부르는 시란 이런 것"

중앙일보

입력 2018.07.31 11:16

3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4' 무대에 오른 켄드릭 라마. [사진 현대카드]

3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4' 무대에 오른 켄드릭 라마. [사진 현대카드]

미국 힙합 뮤지션 켄드릭 라마(31)의 첫 내한 공연은 뜨거웠다. 서울시가 계속되는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한 30일 오후 8시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찾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4 켄드릭 라마’를 펼치니 그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전석 스탠딩으로 마련된 야외공연장을 가득 메운 2만명의 관객은 35℃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을 높게 들고 “켄드릭! 켄드릭!”을 연호했다. 폭염을 압도하는 광경이었다.

30일 종합 보조경기장서 첫 내한 공연
폭염, 음향사고에도 의연한 무대 이어가

라마는 첫 곡부터 힘차게 달려나갔다. “‘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DAMN.)”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공연의 시작을 알린 그는 정규 4집 ‘댐(DAMN.)’의 수록곡 ‘DNA’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1월 열린 제60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를 ‘베스트 랩 앨범’ 등 5관왕으로 만들어준 앨범이다. 이번 내한공연이 지난해 7월 시작된 ‘댐 투어’의 연장 선상에서 열린 만큼 ‘엘레멘트(ELEMENT)’ ‘프라이드(PRIDE)’ 등 4집 수록곡이 대거 포함됐다.

켄드릭 라마는 밤까지 이어진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현대카드]

켄드릭 라마는 밤까지 이어진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현대카드]

‘21세기 힙합 시인’으로 추앙받는 그는 밀당의 고수였다. ‘킹 쿤타(King Kunta)’처럼 장엄한 곡을 부를 때는 관객 위에 군림했고, ‘러브(LOVE)’ 같은 곡을 부를 때는 귀에 대고 부르듯 조용히 읊조렸다.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유연함은 위기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스위밍 풀스(SWIMMING POOLS)’를 부르는 도중 갑자기 마이크가 꺼진 데 이어 ‘로열티(LOYALTY)’에서도 동일한 음향사고가 났지만, 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공연 주최사인 현대카드 측은 “미국에서 온 라마의 음향 스태프 팀에서 기기 작동에 실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계속된 찜통더위와 잇단 음향사고에도 라마는 계속해서 관객들을 독려했다. “한국은 첫 방문이라 신난다. 함께 파티를 즐겨보자”라고 외치며 “지금 나와 같은 에너지와 바이브를 느끼고 있는 것이 맞느냐”며 살뜰히 관객들을 챙겼다. 함성조차도 “자기 자신을 위해” 온 힘 다해 지를 것을 요구하는철학파였다. 다만 켄드릭 라마의 또 다른 정체성인 ‘쿵푸 케니’를 담은 인트로 영상들은 한중일 문화가 뒤섞인 오리엔탈리즘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블락비 지코, 리듬파워 행주 등 많은 힙합 뮤지션들도 켄드릭 라마 콘서트를 찾았다. [사진 현대카드]

블락비 지코, 리듬파워 행주 등 많은 힙합 뮤지션들도 켄드릭 라마 콘서트를 찾았다. [사진 현대카드]

여느 힙합 공연과는 다르게 관객의 머리도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스스로 흑인을 비하하는 ‘니가(Nigga)’라고 칭하며 차별과 폭력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위로하는 ‘올라이트(ALRIGHT)’나 가난과 역경을 딛고 선 성공을 노래하는 ‘험블(HUMBLE)’을 듣다 보면 음악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상념이 많아지는 탓이다. 올해 4월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의 복잡성을 포착했다”며 힙합 뮤지션 최초로 퓰리처상 음악 부문에서 수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영화 ‘블랙 팬서’의 주제곡 ‘올 더 스타즈(All The Stars)’로 70여분 간의 공연은 마무리됐다. “사랑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자”는 이 노래의 도입부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휴대전화 불빛을 켜서 화답했다. 켄드릭 라마는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향해 “아 윌 비 백(Korea, I’ll be back)”이라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지난 28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을 마치고 한국을 찾은 그는 다음 달 북유럽에서 ‘댐 투어’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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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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