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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심각 훼손 땐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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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 635조원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이뤄진다. 최대 쟁점이던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제한적 시행’이란 어정쩡한 입장으로 정리되면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보건복지부는 30일 올해 제6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을 의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 집사가 돼 기업을 잘 감시하고 관리해 노후자금을 지키려는 제도다.

기금위 의결 땐 임원 해임 길 열려 #2020년엔 기업 사외이사도 추천 #제한적 경영 참여 허용 논란 불씨 #전문가 “기업 손 봐주기 악용 우려”

지난 17일 정부가 공개한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은 경영 참여를 보류하고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간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는 우려를 고려해 제반 여건이 마련된 뒤 경영 참여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대신 기업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으면 공개 서한을 발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연금 입장을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기금운용위원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면서 진통을 겪었다. 정부는 지난 26일 열린 5차 위원회에서 제도 도입을 확정하려 했지만 노동계·시민단체에서 경영 참여에 나서야 한다고 맞서면서 결정이 연기됐다. 나흘 만인 30일 다시 열린 위원회에선 3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경영 참여는 원칙적으로 배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업 가치 훼손 등이 심각한 경우에 한해 위원회 의결을 거쳐 임원의 선임·해임 등 경영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찬반 양측 의견을 절충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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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원회가 어떤 상황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는 모호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주관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긴 하다”며 “한두 명이 아니라 위원회 전체의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제한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경영 참여 범위, 제약 요인 등을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와 금융계는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사실상 경영 참여가 가능해졌다. 정부가 손봐주고 싶은 기업에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이참에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운용위원회엔 장차관이 참여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원회 역할이 더 강화된 만큼 독립성·전문성을 보장할 거버넌스 개혁이 필수적이다”고 지적했다.

이날 의결된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르면 올해 안에 기업 이사가 횡령·배임 등으로 손해를 끼쳤을 때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내년에는 위탁 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횡령·배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 등이 발생한 기업을 중점관리 대상(블랙리스트)으로 선정해 비공개 대화 등 주주권을 행사한다. 2020년에는 기업 이사회가 요청하면 사외이사를 추천한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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