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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참여 어정쩡한 기준 … 당장 299개 기업엔 큰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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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30일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했다. 왼쪽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30일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했다. 왼쪽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뉴스1]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거수기’로 불릴 만큼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제한적 경영 참여’ 조건만 제시 #박능후 “사회적 여론 형성되면 … ” #2020년엔 사익편취 기업 명단 공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0일 “건전하게 운영되는 대다수 기업엔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심각한 기업 가치 훼손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피해를 입히는 기업에는 수탁자로서 주주 가치 제고와 국민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기금 자산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에 대한 기업명 공개, 공개서한 발송,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이사 선임과 해임, 회사의 배당 결정, 정관 변경 제안 등 경영 참여 주주권은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 이행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경우’ 제한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박 장관은 “원칙적으로 경영 참여를 배제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에, 기업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돼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다면 위원회 의결을 거쳐 제한적으로 (경영 참여)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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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131조500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의 약 7%에 해당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내일이라도 당장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299개 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며 “제한적 경영 참여라고 하지만 언제든 특정 기업이나 사안에 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에 따른 경영 참여는 정말 예외적인 상황에서 개입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의미로 필요하다”며 “다만 재계에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방안도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우려를 씻기 위해 향후 법령을 정비해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기로 했다. 위탁운용사의 의결권 행사가 국민연금의 수익 제고 등에 반할 경우 의결권을 회수한다는 조항을 뒀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국내 위탁운용사 상당수는 대기업 계열사이고 재벌 총수 일가의 손을 들어주는 성향이 있어 자칫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며 “위탁을 하더라도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는 통제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명현 원장은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위탁 운용을 강화해 시장에 맡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이르면 8월부터 배당 안 하는 기업 압박 강화,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 손해배상 소송 요건 명문화 작업을 완료한다. 먼저 기업에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한 뒤 대화를 거부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중점관리대상(블랙리스트)에 올려 압박한다.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업도 연간 4∼5개에서 8∼10개로 두 배 늘린다.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찬성·반대 여부를 현재 주총 이후 공시하는 방식에서 주총 이전에 공시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다만 사전공시 범위와 내용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또 기업의 이사가 횡령·배임 등으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우 국민연금이 주주대표로 소송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지금은 배당 확대를 위해서만 이러한 주주권을 행사하지만 내년에는 사주 회사의 부당지원 행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 행위 등 주주·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사안까지 블랙리스트에 넣는다. 여기에 들면 1년간 비공개 대화, 기업명 공개, 공개 서한 발송 등의 압박을 가한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는 기업에 대해 2020년부터 주주권 행사가 더 강력해진다. 블랙리스트를 공개하고 공개적 서한을 발송한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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