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복규의 의료와 세상

국가 주도의 임상병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 중에서 새로 개발한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기기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임상시험이라 부른다. 많은 이들은 “첨단 의료”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첨단 의료는 효능과 안전성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하며, 오랜 세월을 거쳐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치료만을 표준 치료나 확립된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확립된 치료만을 해야 한다. 그 외의 치료를 하게 될 때는 환자에게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만약 의사가 어떤 새로운 치료법을 고안해내어 이것이 해당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해도 실제 적용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의학에는 불확실성이 상존하는데 이때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하는 의사의 의무와, 새롭고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해야 하는 연구자의 의무는 서로 상충하기 마련이다.

의료와 세상 7/30

의료와 세상 7/30

의학이 발전하면서 재생의료나 맞춤의료, 인공지능과 로봇 수술과 같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술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산업과 국가의 장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 대부분은 확립된 치료법과는 거리가 멀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구들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신약과 신의료기기에 국한된 임상시험이라는 현재의 틀로는 이러한 기술들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학병원들이 환자 진료에 급급하면서 연구에 집중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구중심병원 등의 과제를 만들어 연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제대로 된 임상연구를 수행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 주도로 첨단임상연구병원을 설립하여 환자 진료가 아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상 환자들은 자원자 중에서 뽑고, 치료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 참여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장래가 의료와 의료산업에 달려있다면 정부가 이런 부분에 과감한 투자를 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는 미래 의료산업을 주도한다는 산업적 측면뿐 아니라 난치병 환자를 구제한다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