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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에 당의 입혀 포장만 바꾼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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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논설위원

김종윤 논설위원

경제 정책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단어 하나가 시장에 던지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용하는 언어가 미묘하게 변한다. ‘소득주도 성장’이 슬그머니 뒤로 밀린다. 대신 ‘포용적 성장’이 옷을 갈아입고 앞으로 등장할 태세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미묘한 변화 #지금 필요한 건 간판 교체가 아닌 효율성 높일 혁신

청와대 대변인은 “포용적 성장은 상위개념이다. 하위개념으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포용적 성장은 아버지고 소득주도 성장은 아버지가 품은 자식이라는 얘기다. 맞는 말인가.

소득주도 성장은 저임금 노동자와 가계의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원래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창한 ‘임금주도 성장’이 뿌리다. 이 이론이 한국에 들어와 소득주도로 화장을 고쳤다. 한국에는 5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가 있다. 소득주도라는 더 넓은 개념이 등장한 이유다.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는다. 이 결과 기업의 생산이 증가하고 투자가 늘어난다.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은 더 증가한다. 이론대로라면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나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가 일자리를 만들고, 어떻게 소득을 늘리냐는 점이다. 정부 주도로 만든 일자리는 임시방편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증대시키는 건 대부분 민간의 몫이다. 소득주도 성장 이론의 흠결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임금을 올리라고 압박할 수 없는 법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임금을 더 주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퍼레이드는 그렇게 나왔다.

이 결과 한계 선상에 놓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정부의 개입을 만병통치약으로 본 소득주도 성장론의 부작용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투수를 바꿨다. 소득주도 성장의 이론적 기틀을 쌓았던 교수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강판당했다. 대신 관료 출신인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가 마운드에 올랐다. 새 경제 수석의 취임 일성은 “포용적 성장”이었다.

포용적 성장은 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OECD 등 국제기구가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이론이다. ‘골고루 잘 살자’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졌다. 빈부 격차는 성장의 걸림돌이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소득도 는다는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가 사라졌다.

지금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총수요 진작 및 경기 활성화를 꾀하는‘분수 효과(Trickle-up effect)’가 필요해졌다. 성장과 분배는 별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두 바퀴다.

어찌 보면 소득주도 성장과 포용적 성장이 가는 길은 비슷해 보인다. 그건 겉 포장만 그럴 뿐이다. 이론적 배경과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포용적 성장의 핵심은 시장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임금이나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정부가 나서 최소화해야 한다고 본다. IMF는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포용적 성장 확장하기’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쟁에서 밀린 소외 계층을 위해 나랏돈을 풀어 교육받을 기회를 보장하고, 건강권과 금융 접근권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최저임금 등 1차적 분배에 개입하고 있다. 이걸 포용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득주도 성장에 당의 입혀 포장만 바꾼다고 경제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 경제 성장의 필수조건은 생산성 향상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 앞에 붙는 형용사 고쳐 쓰기가 아니다. 규제 완화나 노동 개혁과 같은 효율성 높일 혁신이 급선무다.

김종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