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 "아이들을 위한 봉사가 외로움이라는 수렁에서 나를 살렸어요"

중앙일보

입력 2018.07.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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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심무희 봉사자는 지난 2004년부터 월드비전에서 번역 봉사를 했다. 작은 사진은 심무희 봉사자가 월드비전 서신 번역 프로그램에 접속해 후원자와 후원아동 편지를 번역하는 모습. [사진 월드비전]

심무희 봉사자는 지난 2004년부터 월드비전에서 번역 봉사를 했다. 작은 사진은 심무희 봉사자가 월드비전 서신 번역 프로그램에 접속해 후원자와 후원아동 편지를 번역하는 모습. [사진 월드비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후원자와 후원 아동이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한 번, 두 번 주고받는 편지가 쌓일수록 후원 아동은 누군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후원자는 나눔만이 전해주는 행복으로 삶이 채워진다. 현지어가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되고 다시 한국어가 영어에서 현지어로 번역되어 도착한다. 편지 배달엔 많은 이의 정성이 들어간다. 월드비전 해외아동 후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후원자와 후원 아동 서신 교환 과정이다.

월드비전 심무희 봉사자
남편·시모 사별 후 허전함에
해외아동 서신 교환 번역 시작
"가슴으로 배운 보람 매우 커"

 지난 14년 동안 꾸준히 후원 아동과 서신 교환을 진행한 이가 있다. 바로 심무희 번역 봉사자다.

 심무희 봉사자는 2004년부터 월드비전에서 번역 봉사를 했다. 당시 67세였던 심씨는 월드비전에서 실시한 번역 봉사자 선발 과정에 지원해 합격했다. 지난 14년 동안 심씨는 1만2073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그동안 심씨의 나이 첫 자리숫자는 두 번 바뀌었다.

 지난 5월 심씨는 월드비전에 “14년 간 쉬지 않았던 봉사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심씨의 목소리엔 아쉬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심씨는 중풍을 앓는 시어머니, 암을 앓는 남편과 함께 살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가족을 돌보는 데에 썼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심씨의 곁을 떠나고 자녀들도 모두 제 가정을 꾸려 따로 살게 됐다.

 심씨는 “갑자기 많아진 혼자만의 시간이 무섭기까지 했다”면서 “가족과 살던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두려움은 여전했고 혼자 살게 된 지 3년이 되도록 끼니를 챙길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모래사막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듯하고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이 눈물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었다”면서 “보다 못한 동생이 자신이 국제기구에서 서신 번역 봉사를 하고 있는데 언니도 해보라고 권하면서 길고 긴 월드비전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심씨는 한 번도 마감일을 어긴 적 없다. 처음에는 집중할 무언가가 생겨 무작정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아이와 후원자가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용기를 전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에 찾아온 변화를 감사해 하는 이야기에 조금씩 자신의 아픔이 밀려 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내가 빨리 번역을 해서 보내면 아이들과 후원자들이 그만큼 애틋한 기다림이 줄어들겠지.” 이런 마음이 쌓이며 심씨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외로움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번역 봉사가 나를 살렸어요. 후원 아동들이, 후원자가 보낸 편지들이 나를 살린 거예요.”

 성실하고 꼼꼼한 봉사를 통해 봉사자 스스로 느낀 뿌듯함도 크지만 후원 아동과 후원자의 이야기에서 가슴으로 배운 인생의 보람이 더 크다. 성인이 되어 의젓한 모습으로 후원자와 헤어지는 아동이 보내는 편지를 번역할 때는 몇 번씩 울컥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후원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는 분명히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이 될 거예요. 후원자로부터 배운 나눔의 가치를 이 아이들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편지를 읽고 번역하며 생각해요. ‘또 이렇게 잘 자란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는구나, 또 한 명의 후원자가 이렇게 선하고 훌륭한 일을 했구나’라고요.”

 심씨는 올해 팔순이다. 얼마 전 밤에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다 정신을 잃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이 일이 벅차다는 걸 받아들였다.

 후원 아동과 후원자가 주고받는 사랑을 중간에서 소중하게 전달해 온 시간과 노력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심무희 봉사자. 그의 귀한 정성을 통해 사랑·용기·기쁨이 전 세계 곳곳의 소외된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더 건강해서 이 일을 조금 더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끝까지 아쉬움을 놓지 못하는 그는 당부했다.

“월드비전에서는 내가 번역한 편지가 만 통이 넘는다며 대단하다고 하지만 전 그냥 성실히 제 몫을 했을 뿐이에요. 전 제가 번역할 수 있도록 편지를 주고받는 아동과 후원자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 편지들이 제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었어요. 자꾸만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제가 고마워요. 정말로 제가 고맙고 고맙습니다.”

중앙일보디자인=배은나 기자 bae.eu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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