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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집값 잡겠다" 외친지 1년…강남 4억 뛰고 지방 불 꺼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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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단지.

서울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 단지.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인근 도곡동에서 전세로 사는 주부 최모(51)씨는 매매 상담을 받던 중 "그때 집을 샀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집을 사려고 했지만,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말을 믿고 주택 구매를 보류했다. 당시 구매 후보로 꼽던 미도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최근 19억8000만원에 팔려 1년 새 4억원가량 올랐다. 최씨는 "규제가 나오면 집값이 잠깐 내렸다가 다시 오르는 현상이 반복됐다"며 "더는 정부만 믿을 수 없어 지금이라도 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8·2 부동산대책 1년]지금 주택시장은 #집값 잡겠다더니…양극화 심화 #송파 14% 뛸 때 노원 1% 상승 그쳐 #강남·북 집값 격차 2006년 이후 최고 #지방 더 심각, 미분양 증가 #지역별 양극화 심화할 듯 #

부동산 규제 종합세트라 불린 '8·2 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집값 상승세는 많이 꺾였다. 하지만 강도 높은 규제에도 서울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규제의 핵심 타깃인 강남 집값은 잠시 주춤하더니 더 뜀박질하는 모습이다. "거래를 위축시켰을 뿐 강남과 서울 집값 급등의 불씨는 꺼트리지 못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간 집값 양극화는 더 심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8·2대책 전 강남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의 과열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양극화가 주택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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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7월 말보다 평균 6.6% 상승했다. 송파구(13.56%)가 가장 많이 올랐고 강남(10.52%)·강동(9.7%)·광진(9.33%)·용산(8.44%)·마포구(8.25%) 순이었다.

개별 단지로 보면 이런 흐름이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7월 말 17억5000만원에 팔린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124㎡는 최근 이보다 5억원 넘게 뛴 23억원에 거래됐다. 규제 시행 직후인 지난해 9월 16억원대로 밀리기도 했지만, 금세 다시 올랐다. 다주택자 양도세가 시행된 지난 4월 이후에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규제 시행→집값 주춤→집값 재상승'이 반복되며 이전 최고가(2월 22억원)까지 넘어섰다.

잠실동 대왕공인 이기충 대표는 "양도세에 이어 종부세까지 다주택자 중과를 적용하기로 하니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해 '똘똘한 한 채'로 몰리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대치동 제이스공인 정보경 대표는 "주택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가격을 조금 낮추면 집을 사겠다는 대기 수요자만 10여 명"이라며 "규제를 가할수록 강남 집값은 가파르게 오른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서울에서도 상승세에서 소외된 곳이 적지 않다. 노원(1.58%)·금천(2.08%)·중랑(2.46%)·도봉구(2.54%) 등 강북 외곽지역은 최근 1년간 아파트값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3단지 전용 59㎡의 현 시세는 4억5000만원대로 1년 전과 비슷하다. 인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노원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뒤 대출 규제를 강남과 똑같이 적용받은 탓"이라며 "여기선 집 세 채를 팔아도 강남 집 한 채를 사기 어렵다"고 말했다. 8·2 대책 이후 투기지역에선 주택담보대출이 1건 이상 있으면 추가 대출이 불가능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강남권역 아파트값은 3.3㎡당 평균 2837만원으로, 강북권역(1824만원)과의 격차가 2006년 이후 최고인 1013만원으로 벌어졌다.

8·2대책 사정권에서 대부분 제외됐던 지방 주택시장의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거래는 끊겼고, 집값은 연일 약세다. 지방 아파트값이 1년 전보다 평균 1.7% 내린 가운데, 경남 거제시는 13.93% 급락했다. 창원(-9.77%)·안동(-7.29%)·경주(-6.24%)·포항(-5.88%)·울산(-5.21%)도 하락 폭이 컸다. '불 꺼진 아파트'도 느는 추세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6월 지방 아파트 입주율은 76.1%로, 지난해 7월 입주율(81.4%)보다 5.3%포인트 하락했다. 지방의 새 아파트 4집 중 한 곳은 입주자가 없는 셈이다. 거제시 옥산리 거제오션파크자이는 입주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넘었지만, 전체 783가구 중 25%(200여 가구) 정도는 미분양된 상태다. 전용 84㎡가 2억~2억1000만원으로, 분양가보다 3000만~4000만원 싸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가뜩이나 지역경제 침체와 입주물량 부담 여파가 큰 지방에 정부 규제로 매수 심리가 더 위축됐다"며 "다주택자 규제가 서울 '수요 쏠림'을 강화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분양시장에서도 서울 등 인기 지역에만 청약자가 몰리고 지방에선 미달하는 양극화가 여전하다. 이달 청약을 받은 서울 서대문구 힐스테이트신촌은 평균 48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울산 센텀리치파크, 대구 국가산업단지 영무예다음 A8블록 등은 청약자를 구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9833가구로 지난해 7월 말보다 18.8%(2284가구) 줄었지만, 같은 기간 지방(5만3가구)은 18.6%(7838가구) 늘었다.

전문가들은 인기 지역과 비인기지역 간 온도 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서울 강남이나 도심권은 공급이 부족하고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으로 수요가 꾸준하겠지만, 지방은 공급 과잉 등으로 집값 내림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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