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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일본판 ‘전설의 고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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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호 31면

책이 있는 여름 

삼귀

삼귀

삼귀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일본어 단어 ‘모노가타리(物語·ものがたり)’는 ‘이야기’란 뜻이다. 잘 알려진 『겐지이야기(源氏物語)』의 바로 그 ‘이야기’다. ‘일백 백(百)’을 앞에 붙인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ひゃくものがたり)’라는 단어도 있다. 글자 그대로는 ‘100편의 이야기’쯤의 뜻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면 ‘밤에 몇 사람이 모여서 갖가지 괴담을 하는 놀이, 또는 그 괴담’이라고 나온다.

일본작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58)가 2016년 발표한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三島屋·調百物語 三鬼(미시마야헨쵸햐쿠모노가타리 미키)』다. 국내에서는 『미시마야변조괴담 삼귀』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 출간됐다. 이 시리즈로는 『삼귀』에 앞서 『흑백』, 『안주』(이상 2012), 『피리술사』(2014)가 있다.

앞에서 ‘햐쿠모노가타리’를 놀이라고 했는데, 진행 방식은 이렇다. 밤에 사람들이 모여 100개의 촛불을 켠 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무서운 얘기(괴담)를 하고 그때마다 하나씩 끈다. (속설에는 100번째 촛불이 꺼지면 요괴가 나타나거나 마지막 얘기를 한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이쯤 되면 왜 이맘때 이 책인지 얼추 설명됐을 듯하다. 무더운 여름, 귀신이나 원혼이 나오는 괴담만 한 게 또 있을까. 예전 ‘납량특집’이란 수식어와 함께 온 가족을 TV 앞으로 불러모았던 ‘전설의 고향’쯤이라고 할까.

시리즈 전체는 에도 시대(1603~1867) 지금의 도쿄에 위치한 간다 미시마초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를 배경으로, 주인의 조카딸인 오치카가 손님들의 ‘괴담’을 듣는 액자소설 형식이다. 그 중 『삼귀』에는 ▶죽은 이를 그리워해 저승에서 불러내는 이야기 ‘미망의 여관’ ▶도시락 가게 주인과 그에게 붙은 귀신 이야기 ‘식객 히다루가미’ ▶산속에 고립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 이야기 ‘삼귀’ ▶마음의 나이가 14살에 멈춰버린 노파의 이야기 ‘오쿠라님’이 수록돼있다. 열대야가 이어진 요 며칠간 책을 읽었는데, 모골이 송연해지기보다는 가슴이 미어졌다. 귀신(원혼)을 내걸었지만 사실 구구절절한 사연의 사람들 얘기이기 때문이다.

“100화를 쓰면 실제로 괴이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99화까지 쓰고 마지막 이야기는 이걸 계속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게 하면 어떨까.” 이 책 끝부분(655쪽) ‘편집후기’에 인용된 작가의 말이다. 과연 100번째 무서운 얘기에 도전할 무모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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