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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부실 수사, 부모에게 3억원 국가 배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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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 조중필씨의 모친 이복수씨가 26일 선고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조중필씨의 모친 이복수씨가 26일 선고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부실수사의 책임을 지고 피해자 유족에게 3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건 발생 21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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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오상용)는 26일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당시 23세)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총 3억6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조씨의 부모에게 각 1억5000만원씩, 누나 3명에게 각 2000만원씩을 산정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피해와 현재의 국민 소득 수준, 통화가치 등이 변동된 점을 고려했다”고 위자료 산정 이유를 설명했다. 국가 측은 소멸시효가 완성돼 배상해줄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씨의 유족 측은 국가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배상액이 적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6)씨는 “국가의 과실로 오랜 시간 소송을 하며 보낸 것에 비하면 아쉬운 결정”이라며 “우리 같이 힘없는 국민이 힘들게 살지 않도록 법이 똑바로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 측 대리인인 하주희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공소제기 위법성을 어떻게 판단할지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며 “국가가 항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씨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미군 군속 자녀 아서 존 패터슨(39)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39)는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 초기 경찰과 미군 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검찰은 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짓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듬해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유족 측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발했지만 그가 미국으로 도주해 버린 뒤였다. 담당 검사의 실수로 출국금지 조치 연장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검찰은 유족의 재수사 요구에도 패터슨의 소재 불명을 이유로 기소 중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영구 미제가 될 뻔했던 사건은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재조명됐다. 법무부는 같은 해 미국에 패터슨에 대해 범죄인 인도청구를 했다. 검찰은 2011년 재수사로 그가 리의 부추김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패터슨은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다.

이후 그 해 3월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10억원대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두 명의 혐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했는데 당시 검찰은 리만 기소하고 패터슨에 대해선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도주하게 했으며, 2009년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 전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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