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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부모에 3억원 국가 배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족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오상용)는 26일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피해 등을 고려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다”며 위자료로 조씨의 부모인 조송전·이복수씨에 대해 각각 1억 5000만원. 다른 유가족 형제 3인에겐 각각 2000만원을 인정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20년형을 선고받은 아더 존 패터슨. 사건발생 18년,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인 2015년 국내로 송환됐다. [중앙포토]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20년형을 선고받은 아더 존 패터슨. 사건발생 18년,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인 2015년 국내로 송환됐다. [중앙포토]

앞서 조송전씨 등 유족 5명은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명의 혐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했는데 당시 검찰은 리만 기소하고 패터슨에 대해선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도주하게 했으며, 2009년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 전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초 청구액은 총 10억9000만원으로, 부모에게 각 5억원, 형제 3명에 각 3000만원씩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오후 10시쯤. 지금은 사라진 서울 이태원의 ‘버거킹’ 햄버거 가게의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칼에 찔려 살해됐다. 조씨와 함께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미군 군속 자녀 아더 존 패터슨(38)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49)는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1997년 이태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현장 화장실을 검찰이 2012년 서울중앙지검 지하2층에 재현한 모습. [중앙포토]

1997년 이태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현장 화장실을 검찰이 2012년 서울중앙지검 지하2층에 재현한 모습. [중앙포토]

사건 초기 경찰과 미군 범죄수사대(CID)는 범인으로 패터슨을 지목했다. 패터슨의 온몸이 피투성이라는 점, 손에 미국 갱단의 마크가 있고 범죄 수법이 비슷하다는 점이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 검찰은 피해자를 제압할 정도로 키가 큰 리를 범행으로 지목해 살인죄로 기소했다. 앞서 경찰이 리와 패터슨이 공동정범으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리의 단독 범행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1998년 대법원이 살인 혐의로 기소된 리에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흉기 소지 및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됐던 패터슨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조씨의 유족은 그해 11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다시 고발했다. 뒤늦게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담당 검사가 실수로 패터슨의 출국금지 조치 연장을 미처 하지 않은 틈을 타 이듬해인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한 것이다.

결국 검찰은 패터슨의 신병을 쉽게 확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2년 10월 소재 불명을 이유로 기소 중지 결정을 했다. 둘 중 한 명은 가해자가 확실한 상황임에도 진범을 가려내지 못한 사건은 묻혀버리는 듯했다.

영화 '이태원살인사건'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이태원살인사건'의 한 장면. [중앙포토]

수사 당국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영구 미제가 될 뻔했던 사건은 2009년에야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면서다. 비판여론이 들끓자, 검찰이 사건 발생 12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같은 해 12월 미국 내 소재가 파악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미국에 냈다. 이후 미 수사당국과 공조해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패터슨을 체포할 수 있었다. 같은 해 12월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미국 법원도 2012년 범죄인 인도를 허가해 그를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은 패터슨이 2015년 국내로 송환된 뒤 과학수사기법으로 확보한 새 증거를 근거로 그가 리의 부추김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앞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에드워드 리도 공범이라고 판단했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한번 처리된 사건은 다시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는 없었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해 1월 25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인 패터슨에게 징역 20년 형을 선고 확정했다. 사건 발생 18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조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며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형량은 무겁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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