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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 잘못된 것 아니다"송영무 발언 보고서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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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안보전략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안보전략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관 지휘권 밖 기무사를 개혁해야 한다"…위기의 송영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25일 오전 국방부 고위 간부들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엔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송 장관이 사실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던 민병삼 대령(100기무부대장, 국방부 담당)도 참석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날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을 놓고 송 장관 측과 기무사 간에 진실 공방을 벌였다. 국방부는 외형상 평상시와 같았다. 하지만 전날 국회에서 송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 민 대령 등이 계엄령 문건을 놓고 '거짓말 논란'이 벌어진 뒤 양보 없는 2차전을 이어갔다.

국방부는 이날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송 장관에게 보고했던 지난 3월 16일의 출입기록을 초 단위까지 공개했다. 이 사령관이 장관실을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을 찍은 시간은 오전 10시 38분 36초였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 사령관은 10분 정도 대기했고, 송 장관의 다른 일정 때문에 보고 시간은 5분(10시 50~55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송 장관과 보고를 함께 들은 사람이 있다고도 국방부는 밝혔다. 전날 국회에서 송 장관이 “5분 보고받았다”고 했던 주장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기무사 관계자는 이를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이 사령관은 장관실에서 대기하지 않고 바로 보고를 시작했으며, 송 장관 혼자 보고를 받았다. 이 사령관은 사안이 중요하고 엄중하기 때문에 20분 넘게 송 장관에게 이를 상세히 설명했으며, 송 장관도 도중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송 장관은 이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후 오전 11시 국방과학연구소(ADD) 정기이사회에 참석했다. 정기이사회 회의장은 장관실과 같은 2층이다. 이 사령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에서 “20분 보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국방부 간부들과 간담회에서 송 장관이 ‘기무사 위수령 문건은 문제 될 것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는지에 대한 진실 공방도 이틀째 계속됐다. 국방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송 장관의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장관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며 “기무사 계엄령 문건 수사의 본질에서 벗어난 논란이 일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기무사 관계자는 “민 대령이 어제 국회에서 송 장관에게 대든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전날 민 대령이 “송 장관이 계엄령 문건에 대해 ‘문제 없다’고 발언했다”고 했던 것을 옹호했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이 지난 9일 간담회가 끝난 뒤 작성한 문건. 이 문건은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에게 제출됐다. [자료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이 지난 9일 간담회가 끝난 뒤 작성한 문건. 이 문건은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에게 제출됐다. [자료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실]

민 대령은 지난 9일 간담회 발언을 정리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가 24일 국회에서 답변할 때 그대로 읽었던 자료다. ‘장관 주재 간담회 동정’이란 제목의 자료에선 송 장관이 “기무사 검토 문건은 폭탄급인데 기무사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왜 줬는지 모르겠다. 기무부대 요원들이 BH(청와대)나 국회를 대상으로 장관 지휘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많은데 용인할 수 없다”며 “그래서 기무사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한다”며 “장관도 마찬가지 생각”이라고 써 있다.

기무사 관계자는 “민 대령이 매주 월ㆍ수요일 장관 간담회가 끝나면 내용을 메모한 뒤 문건으로 만들어 사령부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 회의록은 전후 사건이 뒤섞이고, 맥락이 혼재됐다. 민 대령이 착각한 것 같다”고 맞섰다. 국방부는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국회 국방위에 제출된 이른바 국군기무사령부 보고서 내용과 관련, 송 장관의 기무사 관련 언급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고 부인했다.

송 장관과 기무사가 국민과 국회가 지켜보는 앞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는 배경을 놓고 군 일각에선 송 장관의 기무사 축소 방침에 기무사가 반발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국방장관과 기무사령관이 전례없는 공방을 벌이는 자체가 군의 기강 해이를 부르고,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추락시킨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특히 각종 논란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송 장관이 이번엔 리더십 위기에 몰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방장관의 국회 발언을 현역 대령이 공개적으로 정면 반박한 사건은 창군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 전직 장성들 사이에선 계엄령 문건으로 위기에 몰린 일부 군 수뇌부가 각자 살기 위해 국민에게 못 볼 꼴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아냥도 돈다. 군 관계자는 “국민 앞에서 장관과 기무사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생생히 공개돼 너무 창피하다”며 “쿠데타 세력으로 몰리는 것도 억울한데, 집안싸움을 하는 꼴이니 더 황당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송 장관이 국방개혁 2.0의 적임자라고 자부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직속 부대인 기무사조차 장악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국방개혁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이날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의 주요 부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문건 작성 테스크포스(TF)에 참가한 15명이 타깃이다. 특수단은 사무실뿐만 아니라 관련자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했다. 이어 문건 작성에 나섰던 기우진 기무사 5처장(준장)을 소환 조사했다. 특수단은 이어 문건 작성을 주도했던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소장)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3당 원내대표는 "계엄문건 작성과 관련하여 국방부 특별수사단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 협의를 거쳐 청문회를 개최한다"고 합의했다

이철재ㆍ이근평ㆍ김경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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