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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조계종, 한국불교 새로 태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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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한불교 조계종이 개혁의 기로에 섰다.

총무원장 친자 의혹 공방 거세 #“원장 물러나야” 단식농성 이어가 #비구니 152명도 사퇴 요구 성명 #총무원 “원장 자녀 아니다” 반박 #내달 초 종단 혁신안 내놓을 듯 #원장 거취 포함될지 시선 몰려

설정 총무원장의 ‘친자 의혹 공방’이 불거지자 설조 스님은 36일 넘게 단식을 이어가며 ‘총무원장 퇴진과 대책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 야권은 ‘설조 스님 단식장’을 중심으로 집결해 있다. 총무원측은 “총무원장 한 사람이 물러난다고 (정치판이 돼버린) 종단이 바뀌지 않는다.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해야 종단이 바뀐다. 그걸 위한 혁신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설조 스님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농성장에서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3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조 스님이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농성장에서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3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의 입장차는 크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입장차가 워낙 커 ‘물밑 협상’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설조 스님은 13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조계종단의 비리 의혹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20일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총무원을 방문해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 종단 내부에서 스스로 노력해 정리되리라 믿으며, 정부는 한쪽 편에 편향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적폐청산’이란 정치적 코드를 공유하며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지 모른다는 세간의 우려는 일단 불식됐다.

조계종이 지난 20일 내놓으려고 했던 ‘종단 혁신안’은 총무원장 거취와 혁신의 강도 등에 따른 내부 이견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원회는 혁신안을 재정비해 8월 초쯤 발표할 예정이다. 이 혁신안에 설정 총무원장의 거취가 포함될지, 만약 포함되면 어느 정도 수준일지가 관건이다. 이에 따라 종단의 ‘여야간 전쟁’이 분수령을 맞을 수도 있다.

거세지는 친자 의혹 공방

◇거세지는 친자 의혹 공방=24일 미국 하와이 무량사 주지 도현 스님이 1999년에 녹음했다는 파일을 하나 공개했다. 설정 스님의 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전모씨의 친모인 김모씨가 설정 스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도현 스님은 “1999년 1월 하와이에서 김씨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녹음한 것이다. 설정 스님이 이 녹취를 들으시고 은처자 문제를 인정하고 사퇴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모씨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친자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에도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친자 의혹이 제기된 전모씨가 해외로 출국해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중앙포토]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친자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에도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친자 의혹이 제기된 전모씨가 해외로 출국해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중앙포토]

조계종 총무원은 즉각 반박했다. 총무원은 미국에 가서 김모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동영상을 지난 5월 유투브에 공개한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김모씨는 “30년 전 경북의 한 사찰에 거주하다가 드나드는 거사에게 일을 당했다. 설정 스님의 자녀가 아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두 인터뷰 중 하나는 거짓이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24일에는 조계종 비구니 152명이 ‘조계종을 걱정하는 비구니 스님 일동’ 명의로 총무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비구니 스님들은 “(설정) 스님에 대한 의혹을 밝히는 것이 총무원장 자격의 회복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불법문중이 세간의 조롱이 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공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한 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총무원장 스님의 결단, 이것만이 불교가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종단 혁신안, 어디까지 나올까 

◇종단 혁신안, 어디까지 나올까=현재 조계종에는 혁신위원회(위원장 밀운스님)가 꾸려져 있다. ‘총무원장 친자 의혹’에 대해 종정 진제 스님이 내린 “한 점 의혹 없이 소상히 규명하라”는 교시 때문이다. 혁신위에는 ‘의혹규명 해소위원회’‘교권자주 수호위원회’‘종단발전 혁신위원회’등 세 개의 소위원회가 있다. 원행(종회의장)ㆍ노현(법주사 각화선원장)ㆍ도법 스님이 각각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설정 총무원장은 자신의 진퇴 여부도 혁신위 결정에 맡긴다고 밝혔다. 만약 혁신위에서 ‘총무원장 사임’을 결정하면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오른쪽)이 지난 10일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을 찾아가 만났다. 설정 스님은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설조 스님은 총무원장직 사퇴를 주장했다.[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오른쪽)이 지난 10일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을 찾아가 만났다. 설정 스님은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설조 스님은 총무원장직 사퇴를 주장했다.[연합뉴스]

설정 스님은 ‘종단의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현실적으로 간단치는 않다. 종단의 제도를 개혁하려면 종법을 바꾸어야 한다. 종헌(종단 헌법)과 종법을 바꾸는 건 중앙종회(국회에 해당)의 몫이다. 현실적으로 중앙종회는 종단 정치권이 장악하고 있다. 종회의원 81명 중 대부분이 ‘종책모임’이라는 이름의 정치 계파에 소속돼 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조계종 관계자는 “혁신위에서 내놓는 개혁안이 종회를 압박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종회가 실제 움직일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종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혁신위가 내놓을 종단 개혁은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헌종법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의 혁신안은 국면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이다.

설조 스님 실제 나이는 88세 아닌 만 76세

◇설조 스님의 실제 나이는 만 76세=“설조 스님이 나하고 한두 살 차이인데, 신문과 방송에 88세라고 나와서 나도 깜짝 놀랐다.” 70대 중반인 조계종의 한 원로스님이 최근에 한 말이다. 그동안 설조 스님은 ‘88세’로 알려졌다. ‘아흔 살을 내다보는 노스님의 목숨 건 단식’이라 더 화제가 됐다. 그런데 설조 스님의 실제 나이는 만 76세다. 1942년 강원도 양양 출생이다. 법명은 원래 ‘월태’였다. 호적을 바꾸면서 법명도 속명과 같은 ‘설조’로 바꾸었다. 설조 스님은 젊었을 적 병역기피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호적을 바꾸었다. 새 호적에는 1931년 전북 김제 출생이라고 돼있다. 조계종의 한 원로 스님은 “단식 농성에서 나이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나이가 기사화되면 ‘내 실제 나이는 76세’라고 솔직히 말하면 되지 않나. 작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팩트와 신뢰에 관한 문제다. 남의 도덕성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문제는 소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아쉬운 일이다”고 꼬집었다.

설조 스님은 토굴에 가서 수행을 하다보니 자신이 병역기피자가 돼 있었으며, 병역기피자로 사는 걸 피하기 위해 호적을 바꾸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88세가 아닌 만 76세임을 밝히진 않았다. [연합뉴스]

설조 스님은 토굴에 가서 수행을 하다보니 자신이 병역기피자가 돼 있었으며, 병역기피자로 사는 걸 피하기 위해 호적을 바꾸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88세가 아닌 만 76세임을 밝히진 않았다. [연합뉴스]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공동대변인 도정 스님은 “설조 스님은 총무원의 혁신안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설정 총무원장의 사퇴와 대책위 구성을 요구할 뿐이다. 설조 스님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전에 설정 스님이 진퇴에 대한 결단을 내리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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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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