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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도하준비 끝!" 올 여름에도 '유격 훈련' 시작…유격장에선 어떤일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17사단 유격훈련'

올해도 유격 훈련장은 개장했다 #야산에 숙영하며 전투식량 먹어 #정세변화 상관 없이 군대는 훈련

“유격! 11번 교육생 도하준비 끝!”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12일 거마산 유격장에서 들려온 외침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지만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유격훈련은 시작됐다. 이날 찾은 17사단은 수도권 서측방 방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지난해 부대 정신을 ‘전광석화’로 개정하며 전투의지를 세웠다. 유격훈련장에는 장병 600여명이 입소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부대 관계자는 “유격전 수행능력 및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배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방과 안보 최전선 현장을 찾는 [배틀그라운드] 이번엔 유격장이다.

유격훈련은 미국에서 탄생했다. 18세기 영국 식민지배를 벗어나려 독립전쟁을 벌이던 미군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군은 넓은 지역을 정찰하고 영국군 후방에 출몰해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히트 앤드 런’ 전술을 폈다. 이러한 유격전은 오늘날 비정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냥꾼으로 구성된 이들 부대가 바로 레인저(RANGER)다. 영국군은 미군 작전에서 교훈을 얻어 특수부대 코만도(Commandos) 훈련법을 만들었다. 다양한 험지와 하천을 돌파하는 훈련이다. 훈련 방법은 오히려 미국으로 역수출돼 정규부대 기초훈련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군은 국군 창설 시기에 미군에게서 유격훈련을 전수받았다.

유격 훈련에서 PT체조 중인 장병들 [사진 17사단 제공]

유격 훈련에서 PT체조 중인 장병들 [사진 17사단 제공]

거마산에 들어선 뒤 ‘참호격투’ 훈련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예상과 달리 훈련장은 조용했다. 잠자리 날아다니고 풀 내음이 가득했다. 여느 시골 여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시계 바늘이 오전 10시에 도착하자 돌변했다. 병사 10명이 참호로 뛰어들었다. 곳곳에선 박수와 ‘파이팅!’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에 잔잔하게 물결치던 참호격투장은 검투사 대결이 벌어진 콜로세움으로 변했다. 유격훈련에 참여한 교육생 5명씩 1조를 꾸려 들어선 뒤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상반신이 격투장 끝에 닿으면 밖으로 쫓겨났다. 동시에 여러 명이 달려들어 밀어내면서 엉겨붙었다. 국방색 내의가 찢어지기도 했다.

뜨거운 훈련 열기에 깜짝 놀랐다. 물어봤다. “특별한 보상이 있나?”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우수 소대를 선발해 외박을 보내준다.”  응원전도 뜨거웠다. “1소대 파이팅!”  “3소대 이기자.” 격한 싸움에 힘이 빠져 눈치 보면서 쉴 틈을 보이자 곳곳에서 야유도 퍼부었다. 다시 힘을 받아 양 진영이 충돌하자 파도타기 응원도 벌어졌다. 십분 간 이어진 몸싸움이 끝났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이뤄진 승부에서 결국 1소대가 최종 승리를 차지했다.

참호격투 훈련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참호격투 훈련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격투장에선 적으로 만났지만 훈련이 끝나자 다시 전우로 돌아왔다. “유격!” 서로 경례를 주고 받고선 끌어안으며 격려했다.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훈련 목적은 충분히 달성됐다. 훈련을 마친 뒤 아이스 박스에서 꺼낸 달콤한 물도 나눠 마셨다. 수통에 미지근하게 데워진 물을 마시던 옛 추억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군 당국은 하루 두 번 생수를 제공한다.

식사도 훈련이다. 그늘 진 숙영지에 올라 전투식량을 꺼냈다. 이날은 구형 전투식량이 배급됐다. ‘전투용 I형 3식단’을 받아 열어보니 ▶햄 볶음밥 ▶팥밥 ▶김치 ▶양념소시지 ▶콩조림이 나왔다. 식사 이후엔 낮잠 시간도 주어졌다. 혹서기를 맞아 오후 3시까지는 훈련을 중단했다. 대신 평소 오전 8시부터 시작하던 훈련은 한 시간 앞당겨 7시부터 시작했다.

장병들이 전투식량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장병들이 전투식량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76번 교육생 도하준비 끝!” 훈련은 오후 3시부터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기초 장애물 훈련장이다. 목소리가 작게 들리자 붉은색 티셔츠와 챙이 긴 모자를 쓴 조교가 외친다. “겁먹지 말고 다시 한번 크게 보고합니다!” 이번엔 교육생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보고를 외친 뒤 담장을 넘었다. 이어 23번 교육생은 담장 아래서 꿇어 앉아 왼쪽 무릎에 두손을 올려 77번 교육생이 올라가도록 도와줬다. 이때 먼저 올라갔던 76번 교육생이 손을 내밀어 당겨줬다. ‘전우와 담장넘기’는 야전에서 바위나 담장과 같은 장애물을 3인 1개 조를 이뤄 극복하는 훈련인데 단결과 협동심도 키운다.

조교들은 안전을 강조했다. 각종 장애물 훈련에서 시범을 보여주며 “찰과상, 낙상, 골절 위험이 있다”며 잘못된 동작 때문에 발생하는 부상을 경고했다. 교육생은 동작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지켜봤다. 철교를 은밀하게 건너가는 ‘엮어가기’와 같은 어려운 동작은 조교와 교육생이 함께 맞춰가며 훈련했다. 군 당국은 비가 내려 장애물이 미끄러워져 부상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훈련 순서를 뒤로 미루거나 다음날로 조정하는 융통성을 보였다.

조교들이 훈련에서 PT 체조를 지시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조교들이 훈련에서 PT 체조를 지시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유격자신! 전광석화!” 유격장 곳곳에서 들여오는 외침이다. “탕탕탕” 가까운 사격장에선 총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유격 훈련장에서 긴장감이 더욱 커졌다. “양팔 벌려 뛰기 5회!” 조교 눈에는 교육생 준비가 부족해 보였는지 동작 전 유격 체조가 반복했다. 쉬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바람처럼 짧게 지나갔다. 그렇게 느껴졌다.

계급장은 내려놨다. 유격 훈련장에선 교육생 번호로 불린다. 중대장도 11번 교육생으로 불렸다. 병사와 간부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17사단 진격대대 4중대장 권용준 대위는 가장 먼저 '타이어 건너기'와 '앵카이용 도하' 훈련에 뛰어들어 모범을 보여줬다. 권 대위가 먼저 앞장서자 다른 병사들도 연이어 도하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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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목소리가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작거나 보고를 생략하고선 지나갈 수 없었다. “원위치!” 3걸음 이상 이동할 때 반드시 “유격자신 전광석화”를 외쳐야 했다. “보고 다시!” 절차를 잊어버린 교육생에겐 찬물을 끼얹듯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왔다. 유격 훈련장에서 만난 김지민 조교(상병)는 “교육 중점은 자심감 배양에 있다”며 “장애물 극복을 위한 근력 강화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도하에 앞서 준비 보고를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도하에 앞서 준비 보고를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보고는 잘 넘어갔지만 훈련은 더 어려웠다. 계곡 사이를 로프를 이용해 넘어가는 ‘앵카이용 도하’ 훈련에서 낙오자가 속출했다. 로프를 오른쪽 어깨에 올린 뒤, 양팔을 가슴으로 최대한 끌어당기며 발을 모아 “V” 모양을 유지해 넘어가야 했지만 실패했다. 21번 교육생은 로프를 잡고 뛰어들었지만 다리가 내려와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체를 끌어올려” 조교가 건넨 지적을 받고선 다시 출발점을 돌아갔다. 성공해야 다음 훈련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언덕에 오르자 바람이 불어왔다. 드디어 휴식시간, 훈련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은 이내 진한 땀 냄새로 바뀌었다. 훈련장에 오르기 전 “단단히 각오하셔야 합니다”라고 귀띔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힘든 훈련에 나선 교육생들 노력이 만든 향기였다. 십분 휴식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PT 체조 5번 준비!, 아직 숙달하지 못했나?”, “9번 준비!, 4회 실시!”, “1번 준비!, 3회 실시!” 거친 숨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옆에 서있던 부대 관계자는 "예전에는 훈련이란 이유로 PT체조를 반복했지만 요즘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초장애물 훈련 중 뒤에서 계단오르기를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기초장애물 훈련 중 뒤에서 계단오르기를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좋아하는 간부는 누구?” 뻔한 질문이 들렸다. 그러나 3m 높이 장애물에 올라선 교육생에겐 좀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머뭇거리던 교육생이 정답을 꺼냈다. “중대장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선 가볍게 ‘뒤에서 계단오르기’ 장애물을 내려왔다. 기울어진 계단을 올라간 뒤 내려오는 훈련인데 계단 위를 발로 밟고 올라가지 않는다. 기울어진 계단 아래에서 양손으로 매달려 계단마다 다리를 걸고 올라가는 훈련이라 어렵다. 유사시 은밀한 기동을 위해 필요한 과정인데 등 뒤로 떨어진다는 공포를 이겨내야 성공할 수 있다.

다음 교육생도 장애물에 올라 양팔 벌려 산 아래를 바라봤다. 그러나 같은 문제는 두 번 나오지 않았다. 조교가 외쳤다. “누가 가장 보고 싶나” 어쩌면 쉬운 문제일 수 있다. 역시나 생각할 틈 없이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훈련장 곳곳에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훈련장 곳곳에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구급차와 의무팀은 항시 대기상태였다. 훈련장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에 대비해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안전조치는 이뤄졌다. 응급헬기와 연락을 유지하며 부상자 후송에 필요한 ‘핫라인’을 가동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부상자와 마주쳤다. 길목에 대기하던 구급차 앞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있었다. 28번 교육생은 “‘타잔 나무타기’ 훈련을 하다 떨어져 발목을 다쳤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산악장애물 후련장에서 수평이동을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산악장애물 후련장에서 수평이동을 하고 있다. [사진 17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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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은 5박 6일 일정으로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다. 기초장애물, 화생방, 산악장애물 훈련 등이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마지막에 남아있다. 40㎞ 퇴소행군이다. 교육생이 유격훈련장에서 소속 부대로 복귀하는 과정까지도 훈련에 포함됐다. 17사단장 김정유 소장(육사 44기)은 “정세 변화 등 외부여건과 무관하게 주어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작전과 훈련에 빈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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