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연의 알쓸신세] “내가 죽으면 날 먹어도 좋아” … 기적같은 세기의 생존

중앙일보

입력 2018.07.25 00:04

업데이트 2018.07.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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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기적인지 과학인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비행기 사고 생존자 72일 만에 생환
칠레 광부들 지하 600m서 버텨
우주 미아 위기 3명 태평양에 안착
우물에 빠진 아기 58시간 만에 구조

최근 태국 동굴에 갇혔던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를 무사히 구조해 낸 당국이 밝힌 소감입니다. 그만큼 보고도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는 거겠죠. 과학이 동원된 기적이 아닐까 싶은데요.

시계추를 돌려보면 이런 ‘세기의 생존’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세바스찬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매몰 광부들이 보낸 쪽지를 들어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세바스찬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이 매몰 광부들이 보낸 쪽지를 들어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72년 10월, 불길하게도 이날은 ‘13일의 금요일’ 이었죠. 우루과이 럭비팀 등 45명을 태운 칠레 행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다 추락하는데요.

날개와 꼬리가 잘려 동체만 남은 비행기는 해발 약 4000m의 눈 덮인 산악지대에 고립됩니다. 영하 40도에 공기마저 희박한 곳에서 최후의 생존자 16명이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어느 날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동료의 시신이었습니다. “그냥 고깃덩어리야, 식량!” “안 할래. 차라리 죽겠어.” 논쟁 끝에 인육을 먹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죠. 이들은 결국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라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생존자 로베르토 카네사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I had to survive)』란 회고록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느꼈지만, 친구가 자신이 갖지 못한 생존 기회를 주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는데요.

로베르토와 난도 파라도가 열흘 걸려 산을 내려가 구조를 요청한 덕에 72일 만에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의대생이던 로베르토는 심장병 분야의 유명한 전문의가 되었죠. 이들의 이야기는 1993년 영화 ‘얼라이브’로도 제작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태국 동굴 소년팀에 스페인어로 “꿋꿋이 버텨라”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낸 이가 있는데요. 8년 전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붕괴사고로 지하 700m(후에 구조 대기장소인 622m 지점으로 이동)에 69일간 매몰됐다 생환한 광부 중 한 명인 마리오 세풀베다입니다. 당시 칠레 정부가 추정한 33명의 생존 가능성은 2%였습니다.

매몰 17일 만에 구조대가 지하로 내려보낸 줄에 “피신처에 있는 33명 모두 괜찮다”란 쪽지가 딸려 왔죠. 칠레의 기술력으로는 구조까지 넉 달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는데요. 이들이 무사 귀환할 수 있었던 건 세계 각국의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구조 캡슐 ‘피닉스(불사조)’는 칠레 해군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도움을 받아 고안했다고 하죠. 일본 항공우주 당국은 지하 습기에 강한 우주인용 속옷을 지원했는데요. 당국은 전화나 편지 등 통신수단으로 지하생활을 버틸 수 있게 애썼는데 한 광부는 이때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답니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의 리더십에도 세계가 찬사를 보냈죠. 그의 지휘 하에 기록, 유머, 의학 담당이 생길 정도였는데요. 광부 중 한 명은 볼리비아인이었는데 오랜 시간 사이가 안 좋았던 양국은 마음을 합해 돕다 관계를 회복했단 뒷얘기도 들립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못지않게 우주 탐사 역사상 길이 남을 사건인 1970년 미 우주선 아폴로 13호의 생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무사 귀환한 미 우주선 아폴로 13호 승무원들. [미 항공우주국(NASA)]

무사 귀환한 미 우주선 아폴로 13호 승무원들. [미 항공우주국(NASA)]

달에 근접했을 무렵 갑자기 우주선의 산소탱크가 터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지구 귀환을 목표로 악전고투를 벌이게 된 3명의 우주인.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것이었고, 우리를 죽일 수 있었다”는 게 선장 짐 러벨의 말인데요. 이산화탄소를 걸러내기 위해 직사각형의 깡통을 원형 장치를 끼워 넣는 묘책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우주선에 있던 비닐봉지, 테이프, 양말, 골판지가 힘을 발휘하죠.

지상 요원들은 이 도구만을 가지고 임시 필터를 만들 방법을 찾았고, 우주인들은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은 무사히 태평양 상에 떨어지게 되죠. 이 과정은 전부 생중계됐는데 시청자는 2860만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우물에 빠진 18개월 제시카 맥클루어의 구조 당시 모습. [AFP=연합뉴스]

우물에 빠진 18개월 제시카 맥클루어의 구조 당시 모습. [AFP=연합뉴스]

1987년 10월 14일 미국 텍사스주 한 집의 뒷마당에서 놀던 18개월의 제시카 맥클루어는 지름 20㎝의 구멍으로 빠져 약 7m 아래 작은 우물로 떨어졌죠. 구출까지 5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제시카는 체중이 1.5㎏ 빠졌습니다. “모두가 제시카의 대부, 대모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을 지킨 국민을 상대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시카는 정작 그 때의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20대 청년인 해리슨 오케네는 2013년 5월 대서양에서 선박이 전복돼 바다 밑에 갇혔지만, 에어포켓(선체 내 산소가 확보된 밀폐된 공간) 덕에 생존했죠. 탄산음료를 마시며 60시간을 버텼다고 하네요.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심리학자인 제니퍼 와일드는 태국 동굴 소년들의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겪게 될 수 있다는 경고인데요. 칠레 광부 역시 후유증 탓에 종종 선글라스를 써야만 잘 수 있다고 하죠. 이들의 생환 스토리가 끝까지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갈 길이 아직 남았다는 얘기일 겁니다.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들이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다양한 세계뉴스를 디지털 감각에 맞게 풀어내는 연재물입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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