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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김영삼은 왜 노무현을 끌어들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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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 이겁니다.”

바꾸지 말자고 주장하는 #꼴통보수에는 미래가 없다 #기득권화, 편향성 강화는 #보수정당이 망하는 길 #시대와 함께할 사람 있어야 #변화와 기회가 찾아올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연세대 특강에서 보수를 이렇게 정의했다.

노 전 대통령 정의대로라면 그런 꼴통보수에게는 희망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친박(親朴·친박근혜)’계는 폐족(廢族)에 이르렀다. 6·13 지방선거로 보수정당은 씨가 마를 처지가 됐다. 그러고도 ‘바꾸지 말자’고 한다면 그냥 말라죽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실제로 요즘 하는 행태를 보면 그렇긴 하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는 순간까지 안에서 난장판이다. ‘비상’ 조직을 만든다면서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선거에 참패한 지 40일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지는 1년4개월이 지났다. 이미 ‘비상’한 기간은 다 흘러갔다. 그 비상한 시기에 한 것이라고는 국회 중앙홀에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현수막을 걸어놓고 무릎 꿇은 이벤트뿐이었다. 정말 반성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버릇처럼 돗자리를 깔았을 뿐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짜증만 난다.

보수가 노 전 대통령 말대로 정말 ‘바꾸지 말자’는 것일까. 지금 자유한국당을 보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정의다. 그런데 바로 그 노 전 대통령을 국회로 데려온 사람이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양 김씨의 분열로 정권교체에 실패한 13대 총선 때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가뜩이나 여소야대(與小野大)였던 13대 국회가 빛을 발한 배경이다.

YS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합당해 민자당을 만든 이후에도 진보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김문수·이재오·손학규 같은 사람들을 14대 총선에 공천했다. 지금 평가가 어떻건 당시 김문수씨는 왼쪽 끝에 서 있던 사람이다. 손학규 교수도 운동권 출신으로 가장 진보적 정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원종 전 민정수석은 당시 YS의 생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민자당이 너무 꼴보수로 가 있어서 스펙트럼이 너무 좁았다. 이렇게는 집권을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문수·이재오 같은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했다.” 그 사람들의 자정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민정당이 민주당을 흡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종교배에 따른 전선 이동이 있었다는 게 이 전 수석의 평가다.

보수정당의 위기는 두 곳에서 온다. 첫째, 기득권화다. 월급쟁이·관료화된다. 정치는 가치의 실현이다. 가치를 위해서는 희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리에 연연한다. 계파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왜 정치를 하는가’ 자신에게 물어 보라. 답을 못 찾으면 물러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둘째, 편향성 강화다. 기득권이 굳어지면 진영화가 가속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모두 묵살하고 신경을 곤두세워 방어한다. 끼리끼리 모여 집단 편향성이 강화된다. 내부 갈등은 순결성, 충성도 경쟁으로 치닫게 된다. 그럴수록 진영은 쪼그라들고 고립된다. 극성 지지자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이다. 자기 가치를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현실 적용을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연구실에서 자기 의견만 쏟아내는 학자와는 다르다. 물론 대중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후유증이 큰 정책으로는 다시 집권하기 힘들다. 선거 때만 약속하고 공수표를 날릴 경우에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 시대와 함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정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앞의 그 특강에서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저를 바꾸어 왔다”고 말했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이라크 파병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지킬 것과 바꿀 것을 가려야 한다. 지켜야 할 가치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반공 노선을 걸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7·4 남북공동성명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복지’를 선거 전면에 내세우고 그에 맞는 진용을 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YS와 손을 잡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고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단순한 야합을 넘어 변신에 성공한 경우다.

그런 변화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3김 시대도 자신을 던진 ‘40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에서건 밖에서건 깃발을 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사람이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