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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갑질 횡포로 편의점 힘들다? 정부, 현장 한번 나오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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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논설위원이 간다] 이현상의 세상만사 

김철영씨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이 진열 상품을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부담스럽다“며 촬영을 거절했다. [이현상 기자]

김철영씨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이 진열 상품을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부담스럽다“며 촬영을 거절했다. [이현상 기자]

“소상공인이 어려운 근본 원인은 (최저임금 상승보다는) 본사의 갑질 횡포와 상가 임대료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10% 이상 오르면서 소상공인들이 ‘불복종 운동’까지 펼치며 반발하자 여당과 노동계,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장이다. 가맹 본사가 가져가는 수익금 비중을 줄이고, 카드 수수료를 낮추고, 임대료를 억제하면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상승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을 대 을’, ‘을 대 병’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갑’의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가 현실성은 있을까. 현장의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수도권의 한 편의점주와 반나절을 같이 보내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온 가족 매달려 주 118시간 근무 #“내년 월수입 90만원 줄어들 판” #“사업 시작 전 매출·수익 나름 계산 #최저임금 급등은 생각 못 한 변수” #가맹 본사 고통 분담 필요하지만 #‘대기업 양보로 해결’은 단순 논리

수요일인 18일 오전 9시쯤 찾아간 양평읍 근처 김철영(41·가명)씨의 편의점은 막 ‘피크 타임’을 지낸 후였다. 국도변에 위치한 이 점포는 평일엔 아침 7시부터 9시까지가 가장 바쁠 때다. 외곽으로 일을 나가는 일용 노동자나 자영업자, 화물차 운전자들이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가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간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밤샘 아르바이트 직원과 근무를 교대한 김씨는 90㎡가량의 매장 상태를 점검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고에서 재고품을 꺼내 빈 진열대를 채우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이나 신선제품은 없는지 체크한다. 오전 7시쯤 도시락과 냉동제품 등을 싣고 온 차량을 맞아 물건을 확인해 진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창고 정리를 하다가도 ‘띵똥’ 소리에 매대로 뛰어가 손님을 맞는다. 김씨는 “그래도 폭염이 시작되면서 음료수와 빙과류 제품이 많이 나가 매출에 조금 도움이 된다”며 위안으로 삼았다.

오전 11시, 김씨는 아르바이트 아주머니와 근무를 교대했다. 그러나 일은 끝나지 않았다. 30분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잠깐 쉰 뒤 오후 4시쯤 집 근처 주택가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편의점으로 출근해 아내와 교대한다. 사실 이곳은 국도변 점포보다 먼저 개점했다. 작년 4월 주택가 매장을 열고 장사해보니 괜찮다 싶어 석 달 뒤 국도변 매장을 추가로 열었다. 그런데 열자마자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이 결정됐다. 김씨는 “매출은 조금씩 올라오고 있지만, 인건비가 확 뛰어서 수익이 예상보다 낮다”고 말했다. 두 가게 모두 7000만원 정도의 창업 비용이 들었다. 경기도 외곽이라 임대료가 비교적 싼 데다 인테리어비를 본사에서 대기 때문에 초기 부담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12일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원들의 최저임금 인상 항의 장면. [뉴스1]

12일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원들의 최저임금 인상 항의 장면. [뉴스1]

근무는 어떻게 하나.
“국도변 점포에선 내가 평일 5시간씩 일하고 토·일엔 8시간씩 일한다. 주택가 점포에선 나와 아내가 돌아가며 평일 하루 13시간 일하고, 주말엔 어머니가 도와주신다. 아르바이트생에 줄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는 셈이다. 일주일 근로 시간? (잠깐 계산 후) 나는 70~80시간쯤 되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 가족 전체로는 118시간이란 계산이 나온다. 국도변 점포 6명, 주택가 점포 5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있다.”
수익은 어떤가.
“지난달 가게당 월 매출이 4500만원 정도였다. 마진율이 26~27% 정도여서 1200만원 정도의 판매 마진이 생기는데, 이 중 30%를 본사가 가져간다. 840만원 정도가 내 몫인데, 전기료·카드수수료·폐기상품비·임대료·유지비 같은 비용을 빼면 대략 550만원이 남는다. 여기서 인건비가 나간다. 국도변 점포는 480만원, 주택가 점포는 350만원 정도가 든다. 올해 최저임금이 뛰자 본사에서 ‘상생 지원금’ 명목으로 40만원 정도 나온다. 전기료 지원(30%), 폐기상품 지원비, 유지관리비 지원 등이다. 이 돈을 합치면 결과적으로 국도변 점포에선 110만원, 주택가 점포는 240만원 정도의 순수익이 남는 셈이다.”

김씨 가족의 수입과 일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시급 7000원꼴이다. 올해 아르바이트 최저임금 7530원(주휴수당까지 계산하면 9036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김씨는 “그래도 월세가 서울에 비해서는 낮은 120만~130만원밖에 안 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최저임금 10.9%가 오르면 인건비가 90만원쯤 는다. 딱 그만큼 김씨 가족의 수입은 준다. 김씨는 “이미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씩 줄이고, 나나 가족들이 일하는 시간을 하루 2시간씩 늘렸다. 학교 다니는 아이도 있어 가족 근무를 더 늘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씨는 창업 전 유통업체에서 일했다. 편의점업계의 생리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김씨는 본사 수수료나 카드 수수료, 임대료 등이 인건비보다 점주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김씨는 “현장에 한 번이라도 나와 보면 이런 말이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가맹점을 열기 전 점주들은 가맹 본사와 함께 시뮬레이션한다. 예상 매출과 마진율, 임대료, 각종 영업비용, 인건비 등을 따져 승산이 있어 시작한다. 어차피 ‘대박’을 기대하고 문을 여는 점주는 없다. 그런데 인건비만 2년 사이에 30% 가까이 올랐다. 내가 예상 못 했고, 통제할 수 없었던 변수다. 임대료는 올라봤자 매년 5% 이내다. 카드 수수료? 어차피 1년 매출 5억원이 안 되면 매출의 1% 내외에 그친다. 이것 몇푼 깎인다고 인건비 부담 상쇄 못 한다.”

김씨도 가맹 본사가 고통 분담에 더 나서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본사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낮추자는 주장은 따져볼 점이 많다는 생각이다. 본사 수수료는 일반적으로는 판매 마진의 30% 선이다. 그 대신에 본사는 초기 인테리어비를 대주고, 각종 판촉 지원이나 지도 등을 해준다.

실제 수수료 비율과 본사 지원 조건은 점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점포의 예상 매출이 좋은 경우 점주 비율이 좀 더 많아지고, 점주가 심야 영업을 포기하면 본사 비율이 높아지는 식이다. 표준 계약서상의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낮추더라도 본사와 점포 간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일률적으로 수수료를 낮추면 결국 매출 많은 점주가 더 혜택을 본다. 매출이 작은 점주는 수수료 인하보다 전기료나 폐기상품비 지원 같은 영업비 지원을 늘리는 것이 더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 외에 김씨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경쟁 점포의 출현이다. 동일 브랜드는 250m 내 출점 제한을 받지만, 경쟁 브랜드의 출점은 제한이 없다. 1994년 편의점 업체들은 ‘기존점과 80m 이내에는 신규 출점을 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으나, 2000년 공정위가 이를 담합행위로 판단해 무효로 했다. 점주들은 출점 제한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

경쟁 격화와 점포 지원 비용 증가 등으로 CU, GS25, 세븐일레븐 등 3대 편의점 본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4%대에서 0~2%대로 뚝 떨어졌다. 이익이 줄어들고 있기는 카드업계도 마찬가지다. 갑-을 관계 해소에서 최저임금 문제의 해법을 찾겠다는 ‘프레임 전환’이 성공하기엔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