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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고 있다’가 넘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10여 일째 폭염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온열질환자가 900명에 육박하면서 관계기관에서도 연일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문제는 표현 방식이다. “지난 5년간 보고된 온열질환자 6500명 중 40%는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발생하고 있고, 작업장 등 실내에서 발생한 경우도 20%에 달하고 있다”와 같이 ‘~고 있다’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어색한 문장이 됐다. ‘발생하고 있고’를 ‘발생했고’로, ‘달하고 있다’를 ‘달한다’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 농·축·수산물 등에도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도 쓸데없이 ‘~고 있다’를 붙여 문장이 늘어졌다. ‘피해가 우려된다’로도 충분하다.

우리말에서 ‘~고 있다’가 남용되기 시작한 건 현대국어에 와서다. 이 말의 일본어 형태인 ‘~ている’의 영향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다 영어의 진행형인 ‘~ing’를 ‘~고 있다’로 단순 암기하면서 이 말이 더욱 퍼지게 됐다.

“태풍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처럼 행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거나 그 행동의 결과가 지속됨을 나타낼 때는 ‘~고 있다’를 써야 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하고 있다’ ‘보고 있다’ ‘가고 있다’를 ‘한다/했다’ ‘본다/봤다’ ‘간다/갔다’로 바꿔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을 때가 많다. 오히려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 우리말의 맛이 살아난다.

‘~고 있다’가 진짜 진행 중인 것인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구분해 문장을 기술해야 한다. 실제 진행 중이라고 하더라도 글의 흐름상 충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굳이 ‘~고 있다’로 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고 있다’로도 모자라 존칭 형태인 ‘~고 계시다’도 마구 사용되는 실정이다. “형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의 경우 ‘농사를 지으신다’고 하면 된다.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고 계셨다”도 ‘잊지 않으셨다’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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