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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 의원체포까지…기무사 계엄문건에 등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각될 경우를 상정해 당시 군이 언론과 국정원은 물론 국회의 계엄해제 시도까지 무력화하는 세부 계획이 담긴 국군기무사 부속 문건이 20일 새롭게 공개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전날 국방부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제출한 자료를 받아본 문 대통령이 문건 공개를 지시했다며 일부를 공개했다. 최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기무사 작성 문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년 3월)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의 대장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의 대장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공개한 총 67쪽 분량의 이 문건은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4가지 분야를 포함해 총 21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청와대는 계엄령 문건과 동일한 시기인 2017년 3월,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됐을 경우를 상정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은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에서 통상적으로 2년마다 수립하는 ‘계엄실무편람’과는 내용이 전혀 상이하다는 게 청와대 판단이다. 김 대변인은 “해당 문건에는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유지 하에 신속한 계엄선포, 계엄군의 주요 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실행을 염두에 뒀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 대변인은 “그건 여러분들이 판단해 달라”며 말을 아꼈다.

 문 대통령, 송영무 국방 장관과 대화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심승섭 신임 해군참모총장의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을 마친 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2018.7.19   hkmpooh@yna.co.kr/2018-07-19 11:50:3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문 대통령, 송영무 국방 장관과 대화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심승섭 신임 해군참모총장의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을 마친 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2018.7.19 hkmpooh@yna.co.kr/2018-07-19 11:50:3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번 세부계획 문건 공개로 기무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한 층 더 부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계엄 선포에 대비해 전국 비상계엄 선포 건의, 비상계엄 선포문, 담화문, 포고문 등의 문서가 이미 작성돼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담화문의 경우 김 대변인은 “1979년 10·26(사태),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계엄령 때 것과 함께 2017년 3월에 공포할 내용이 나란히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계엄 선포와 함께 군이 국회, 언론, 국가정보원 등을 통제하는 방안 등도 담겨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국회의 경우 계엄 해제를 막기 위해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표결에 불참시키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김 대변인은 “구체적으로는 먼저 계엄사령부가 집회ㆍ시위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한 뒤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을 한 의원들을 집중검거 후 사법 처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헌법 77조 5항에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령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한 조항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김 대변인은 덧붙였다.

 언론에 대해서는 “‘계엄사 보도검열단’ 9개 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ㆍ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도 작성돼 있었다”며 “각 언론사 별로 몇 명이, 구체적으로 어느 기관에서 가는지가 나와 있다”고 김 대변인은 말했다. 아울러 국정원의 경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하는 등 국정원 통제계획도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김 대변인은 말했다.

  이밖에도 계엄사령부가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와 집회 예상지역인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계엄군을 투입하는 방안도 문건에 포함됐다. 김 대변인은 “중요시설 494개소 및 집회예상지역 2개소인 광화문과 여의도에 기계화사단, 기갑여단, 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엄임무 수행군을 야간에 전차ㆍ장갑차 등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투입하는 계획도 수립돼 있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해당 문건을 공개하며 “국방부 특별수사단도 이 문건을 확보하고 있다”며 “청와대는 이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계획 여부, 이 문건의 배포 단위’ 등에 대해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문서 공개로 계엄령 문건 작성자들의 내란 음모 혐의가 짙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연이은 청와대의 공개 브리핑으로 군 특별수사단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앞으로 나올 때마다 추가로 이렇게 공개를 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김 대변인은 “이 문건 외에 다른 문건이 있는지 여부는 제가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것(공개 여부)은 문건을 검토한 후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은 20일 오전 국회에서 군사법원과 감사원에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날 송영무 국방부 장관, 김용우 육군참모총,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 공군 참모 총장을 대신해 이성용 공군 참모차장,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 등 수뇌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출석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가운데)이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 뒤는 이석구 기무사령관. 변선구 기자 20180720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은 20일 오전 국회에서 군사법원과 감사원에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날 송영무 국방부 장관, 김용우 육군참모총,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 공군 참모 총장을 대신해 이성용 공군 참모차장,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 등 수뇌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출석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가운데)이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 뒤는 이석구 기무사령관. 변선구 기자 20180720

 한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문건을 작성해서는 안 될 부대가 왜 문건을 작성했는지에 포커스를 두고 근본적으로 기무사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런 문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하다”면서 문건 내용에 대해 여러차례 ‘위법’이라고 규정했다.

 송 장관은 지난 3월 계엄령 문건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이후 최근에야 청와대에 구체적인 보고를 한 것과 관련, “혼자 정무적 판단을 했는데 후회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평창 겨울) 패럴림픽이 막 끝나서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일기 시작할 때였고, 특히 염려됐던 것은 6·13 지방선거에 이게 너무 클 것 같았다”며 “(공개를 하면) 선거가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위문희·김준영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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