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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이 반한 12폭포, 포항 내연산에서 즐기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27)

보경사계곡 제6폭인 관음폭포. 기암절벽 사이를 잇는 연산구름다리와 그에 아랑곳없이 제 갈 길로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어울림이 좋다. [사진 하만윤]

보경사계곡 제6폭인 관음폭포. 기암절벽 사이를 잇는 연산구름다리와 그에 아랑곳없이 제 갈 길로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어울림이 좋다. [사진 하만윤]

7월, 내연산 초입 새벽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계곡과 폭포로 유명한 내연산에 도착한 것이 새벽 4시. 여느 때 같으면 제법 서늘했을 시간인데 잇따른 폭염주의보는 새벽 공기마저 덥혀놓았다.

내연산은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과 죽장면, 영덕군 남정면 경계에 있다. 예전엔 종남산으로 불렸으나 신라 51대 진성여왕이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더 깊숙이 들어가 견훤의 난을 피한 이후로 내연(內延)산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이곳 남쪽 기슭에 신라 천년 고찰 보경사가 있고 그 부속암으로 서운암과 문수암이 있다. 특히 이 남쪽 기슭에서 동해로 흐르는 계곡은 경북 8경의 하나로 꼽힌다. 청하골, 갑천 계곡 혹은 보경사계곡으로 불리는 이 계곡은 약 12km에 달하는 구간에 기암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 12개가 연이어 모습을 드러낸다.

보경사계곡은 경북 8경의 하나로 꼽혀

이번 산행코스는 보경사계곡에서 문수암 쪽으로 올라, 정상인 삼지봉까지 갔다가 다시 보경사계곡의 여러 폭포를 보며 하산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하산 후 해수욕장 나들이는 덤이다.

후텁지근한 새벽공기를 가로지르며 보경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사진 하만윤]

후텁지근한 새벽공기를 가로지르며 보경사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사진 하만윤]

동이 트기 전 이른 시간에 보경사 일주문을 지난다. 보경사는 경내에 포항의 보물 여섯 개 중 다섯 개가 있는 문화재 지정구역이다. 보물 제252호인 원진국사 비를 비롯해 적광전, 괘불탱, 승탑, 서운암 동종 등 왕사(王師)를 거절하고 폐허가 된 사찰을 다시 세우는 데 전념한 원진대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일행은 시간에 쫓겨 서둘러 보경사 옆으로 나 있는 계곡으로 향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텁텁한 공기를 뚫고 귀에 청량하게 와 닿는 물소리에 가슴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시원한 물소리를 벗 삼아 20여 분을 오르자 문수암으로 향하는 고갯길에 다다른다. 문수암을 올라 문수봉까지가 이번 산행 중 가장 힘든 여정이다. 그래도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 50여 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이른 아침 40여 명이 걷는 소리에 단잠을 깼는지 숲속 여기저기 새들이 난리가 난 듯하다. 그 놀란 기운이 소란스러운 새소리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도심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맑고 고운 지저귐이다. 자기네 삶의 터전에 발을 들인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는 이 소리가 필자에겐 정겹게만 다가온다.

키 낮은 일주문과 물웅덩이에도 기와를 두른 정갈함이 문수암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사진 하만윤]

키 낮은 일주문과 물웅덩이에도 기와를 두른 정갈함이 문수암이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사진 하만윤]

문수봉에 오르는 도중에 만난 문수암은 고찰의 암자치고는 꽤 소박하다. 일주문을 낮추어 오가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 낮추게 하니 문수암의 소박함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기와를 둘러 만든 물웅덩이조차 단아하고 멋스러워 한참을 서서 내려다보게 된다.

문수봉에서 찍은 단체 사진. [사진 7080 산처럼]

문수봉에서 찍은 단체 사진. [사진 7080 산처럼]

문수봉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난 뒤 다시 삼지봉을 향해 걷는다. 여기서부터는 크게 오르내림 없이 평이하게 걸을 수 있다. 게다가 고도가 높아지면서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시원하게 바뀌어 걷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능선길에 시원한 바람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삼지봉에 다다른다. 해발 711m에 있는 삼지봉은 내연산 정상이다. 내연산 최고봉은 향로봉(930m)이지만 주봉은 삼지봉이다. 삼지봉을 중심으로 주요 산줄기가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별다른 전망이 없다. 그래도 정상에서 인증사진 한 컷은 필수. 삼지봉에서 일행들은 갖은 포즈로 추억을 남긴다.

내연산 삼지봉 정상석. [사진 하만윤]

내연산 삼지봉 정상석. [사진 하만윤]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주변 풍광이 그중 으뜸

이제 하산길이다. 보경사계곡으로 하산하려면 올라온 길 중 거무나리골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 600여 미터를 되짚어가야 한다. 일행은 갈림길에 도착해 이른 아침을 먹는다. 마땅히 함께 먹을 공간이 부족해 길옆으로 두 줄로 마주 보고 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다. 이후 갈림길에서 보경사계곡까지는 가파른 경사길이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떨어져 흩어지는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보경사계곡에서 간단히 더위를 식힌다. 계곡 물놀이는 어른도 아이로 만드는 힘이 있다. [사진 하만윤]

보경사계곡에서 간단히 더위를 식힌다. 계곡 물놀이는 어른도 아이로 만드는 힘이 있다. [사진 하만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바로 계곡이 펼쳐진다. 계곡 길을 따라 걸으면서 일행들이 쉴 수 있는 넓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아침 내내 흘린 땀을 식힌다. 장마가 일찍 끝나고 비가 오지 않아 물이 깊지 않으나 더위를 식히며 잠시 장난꾸러기 아이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하산 길에 보경사계곡 12폭포를 찬찬히 다시 본다.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고 그래서 저마다 운치가 있다. 오죽하면 조선 중기 화가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면서 12폭포의 아름다움에 반해 ‘내연삼용추도’를 그렸을까. 12폭포 중에서는 제6 폭포인 관음폭포와 제7 폭포인 연산폭포를 으뜸으로 친다. 특히 거대한 암벽과 신비로운 동굴, 넓고 깊은 소가 있는 관음폭포 주변 풍광은 정말 아름답다.

관음폭포 맞은 편 기암절벽 꼭대기의 선일대. [사진 하만윤]

관음폭포 맞은 편 기암절벽 꼭대기의 선일대. [사진 하만윤]

관음폭포에서 맞은편을 올려다보니 기암절벽 위 선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에 내려와 삼용추를 완성한 후 이곳 선일대에 올라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또, 겸재 정선이 내연삼용추도,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 등의 그림을 남겨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선일대 암봉에 전통 8각 정자의 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그 위 올라 아래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에 와서 보면 될 일이다.

새벽 문수봉 오르는 길에 바라본 상생폭포(좌)와 하산 길에 다시 만난 상생폭포(우). [사진 하만윤]

새벽 문수봉 오르는 길에 바라본 상생폭포(좌)와 하산 길에 다시 만난 상생폭포(우). [사진 하만윤]

그렇게 폭포와 계곡을 구경삼아 내려오다 제1 폭포인 상생폭포를 만난다. 문수봉으로 오를 때는 그저 그런 폭포인가 싶었는데 하산 길에 다시 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두 줄기 폭포가 나란히 사이좋게 흘러내리며 그리는 풍경이 마음에 콕 박힌다.

드디어 다시 보경사에 도달한다. 오르는 길에 계곡 소리로 일행을 반겼던 보경사는 하산 길에는 잘 자란 적송의 푸르름으로 일행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정오가 되기 전 일찍 산행을 마친 일행은 때마침 당일 개장한 장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내연산과는 지척이다.

산을 오르고 계곡 물놀이에 바다 해수욕까지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내연산이 여름 산행지로 인기가 높은 게 이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내연산으로 향한다면 그 행운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보경사-문수암-문수봉-삼지봉-거무나리골-보경사계곡-보경사. 총거리 약 14Km, 총시간 약 7시간 30분. [사진 하만윤]

보경사-문수암-문수봉-삼지봉-거무나리골-보경사계곡-보경사. 총거리 약 14Km, 총시간 약 7시간 3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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