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제주 ‘예멘 난민’ 길에 나앉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달 18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상담회에 몰린 예멘 난민 신청자들. 이날 출입국청에는 300여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모였다. 제주에 있는 예멘인을 대상으로 취업 상담과 의료지원을 한다는 소식에 몰려들었다. 난민법에 따라 난민 심사 시작 6개월 이후부터 취업이 가능하지만 출입국청은 당시 생계 어려움을 호소하는 예멘인들을 위해 조기 취업을 허용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18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상담회에 몰린 예멘 난민 신청자들. 이날 출입국청에는 300여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모였다. 제주에 있는 예멘인을 대상으로 취업 상담과 의료지원을 한다는 소식에 몰려들었다. 난민법에 따라 난민 심사 시작 6개월 이후부터 취업이 가능하지만 출입국청은 당시 생계 어려움을 호소하는 예멘인들을 위해 조기 취업을 허용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8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제주시 한복판 신산공원에 예멘인 7명이 노숙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숙과 관련한 첫 신고였다.

486명 제주도 밖 이동 금지 80일 #일 없고 돈 떨어져 40명 노숙 시도 #“방치하면 주민들과 갈등 우려” #정부, 난민 심사기간 단축 검토

지난달 29일엔 제주 함덕해변 야영장에 예멘인 8명이 텐트를 쳤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외국인청은 이들을 인근 관광호텔 등으로 안내했다. “일자리를 얻으면 후불로 숙박비를 내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한국 사회에 본격적인 난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주 체류 예멘인이 노숙을 한다는 신고가 늘고 있다. 19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노숙을 시도한 예멘인은 지난달 8일 이후 최근까지 40명에 달한다.

관련기사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노숙 신고가 들어오면 숙소를 소개해 주거나 거처를 알려 주고 있다”며 “최근에는 돈이 떨어져 아예 노숙할 것 같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30일 법무부가 무비자 입국 예멘인에게 제주도 밖 이동을 금지한 조치(출도 제한)를 내린 후 80일이 지났다. 하지만 제주에서 취업하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예멘인들이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 난민 심사가 지체되고 제주도 밖 이동 제한 조치가 장기화하면 노숙 시도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으로 제주 체류 예멘인 486명 중 247명이 도내 요식업과 농·어업 분야에 임시 취업했다. 지난달 14, 18일 취업설명회 직후 382명이 취업한 것과 비교하면 135명(35.3%)이 줄었다. 취업한 예멘인과 이들을 고용하는 주민의 갈등 분위기도 감지된다. 두 달 전 제주에 온 예멘인 파로(32)는 삼겹살 집에서 일하다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업주의 이야기에 일을 그만뒀다. 그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 무슬림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며 “두 달 동안 일은 없고 돈은 떨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제주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는 A씨는 “일하다 말고 예멘 친구가 메카를 향해 기도해 작업을 멈춘 경우도 있다”며 “일을 배우려 하지 않고 불평도 많아 일을 주기가 쉽지 않다”고 얘기했다.

난민 심사 결과만 기다릴 게 아니라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멘 난민 신청자 구호활동을 하는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의 김상훈(61) 사무국장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예멘인들이 노숙하게 될 경우 제주도민들과 더 큰 갈등을 일으킬 위험이 있어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빈 공공시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난민 문제에 대해 찬반으로 대립하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공보관은 “한국은 지금까지 많은 난민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난민 심사 제도를 정착시키고 전문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심사 기간을 단축해 가짜 난민을 신속히 걸러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주=여성국·이태윤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