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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애먼 학생이 무슨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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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2009년 10월 신종플루가 빠르게 확산되자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설이 나돌았다. 정부는 즉각 “수능에 어떠한 차질도 없도록 의료인력 배치, 격리 시험 등을 세밀하게 준비하겠다”며 진화했다. 예정대로 수능이 치러졌음은 물론이다. 2015년엔 메르스가 문제였다. 학교 휴업이 속출했지만 수능 모의평가는 정부가 밀어붙여 그대로 실시됐다. “시험 연기는 후유증이 너무 크다”는 게 이유였다.

이런 대입 국가시험도 연기된 적이 두 번 있다. 입시 사상 초유의 시험지 도난으로 인한 게 첫 번째다. 1992년 1월 학력고사 전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이 사건으로 시험이 20일 연기됐다. 학사일정이 줄줄이 미뤄지는 대혼란의 책임을 지고 교육부 장관이 사임할 만큼 충격이 컸다.

두 번째 연기는 지난해 수능 전날 발생한 포항 지진 때문이었다. 수능 일주일 연기 결정이 수험생에게 전달된 건 밤중이었다. 수험생 안전에다 시험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고려한 급박한 조치였다. 당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엔 “불안해 미칠 것 같습니다. 수능 딱 하루만 연기해 주세요”라는 포항 수험생 글이 올라왔다.

이번엔 광주 지역 고3 학생들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호소할 처지다. 광주의 한 사립고에서 발생한 중간·기말고사 시험지 유출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서다. 해당 학교는 물론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다음달 시작되는 수시전형에서 혹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광주는 입시 관련 트라우마가 있다. 수능 부정행위 잔혹사가 시작된 곳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 학생 12명이 구속되는 조직적인 ‘휴대전화 부정행위’로 파문을 일으켜서다. 2년 전 광주의 한 여고에서 생활기록부를 조작한 사건도 달갑잖은 기억이다. 해당 학교의 주요 대학 수시 합격률이 떨어지고 광주의 다른 학교 수험생들까지 불이익을 봤다고 한다.

이러니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광주 출신’ 지원 서류를 대학들이 또 외면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 학부모와 행정실장의 도덕적 해이가 빚은 일회성 일탈로 보인다. 연루 학생은 자퇴한 상태다. 그런데도 남은 애먼 학생들의 그간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전전긍긍한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대학들이 “광주 학생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정성·형평성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때마침 내일부터 이틀간 광주에서 열리는 ‘2019학년도 대입 박람회’에 전국 116개 대학이 참여한다. 광주 학생들은 죄가 없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