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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3조원 공기업 6000억 … 국회 동의 필요 없는 돈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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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랏돈 풀어 경기 부양, 저소득층 소득 지원’. 경기 하강과 양극화 심화, 고용 부진에 맞서 문재인 정부 경제팀이 또다시 내민 카드다. 정부가 18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저소득층 일자리·소득지원 대책’의 핵심은 기금운용계획 변경 등을 통한 3조8000억원 규모의 ‘미니 부양책’과 기초연금 인상, 어르신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한 ‘취약계층 소득지원’이다.

[경제정책 방향 발표] 재원은 #취업 증가 전망 32만 → 18만명 수정 #김동연·장하성 격주 회동 정책 조율 #기금 꼼수 활용 이전 정부의 재탕 #“마구 쓰면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

정부는 우선 기금과 공기업의 돈을 동원해 3조8000억원 규모의 재정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주택도시기금과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3조2000억원을 투자해 주택구입·전세자금 대출, 구조조정 업종 보증, 공공기관 태양광 보증 등을 늘린다. 기금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의 20% 내에서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다.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한국도로공사 등이 6000억원을 더해 노후 임대주택 정비, 도로·철도 안전설비 확충 사업 등을 벌인다. 지난 5월 통과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3조9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미니 추경’에 해당하는 셈이다.

내년 재정 지출도 크게 늘린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2019년도 재정지출을 당초 계획보다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와 관련, 김동연 부총리는 “내년 총지출 증가율이 7% 중반대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0%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김 부총리의 언급보다 지출 증가율이 더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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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에는 돈을 더 쥐어준다. 근로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근로장려세제(EITC) 지원대상과 지급액을 2배 이상 늘린다.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청년에게 주는 구직활동지원금은 현행 ‘월 30만원 한도 3개월간 지급’에서 ‘월 50만원 한도로 6개월 지급’으로 확대한다. 또 내년에 총 8만 개 이상의 노인 일자리를 신규 창출할 계획이다.

이런 대책의 배경에는 지난 1년간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정부’라는 정부 구호를 무색하게 한 각종 지표가 자리한다. 3%대 성장이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양극화 수준을 보여주는 5분위 배율(상위 20% 가구의 소득을 하위 20% 가구의 소득으로 나눈 수치)은 1분기 기준으로 올해 5.95다. 2003년 이후 가장 높다. 고용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올해 취업자 증가 수를 18만 명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말 전망(32만 명)보다 14만 명이나 깎았다.

사실상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보여준 수치임에도 이번 대책 역시 기존 정책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민간에서 고용과 투자가 일으킬 만한 유인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회 통제를 받지 않는 기금을 마구 사용하는 건 ‘꼼수’라는 목소리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어느 정부나 국회에 보고하지 않는 기금을 활용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기금 역시 나랏돈인 만큼 남용하면 결국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격주 정례회동을 하기로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8일 “두 사람이 지난 6일 처음으로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며 “청와대와 기재부의 팀워크를 강화하는 채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월부터 문재인 대통령에게 매달 정례 보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노선을 놓고 두 사람 간의 갈등설이 잦아들지 않으면서 별도의 소통 채널을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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