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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가짜 난민이 형님을 죽였다" vs "난민 목소리 들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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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난민 태풍'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500여명의 예멘 국적자들이 제주에 몰려와 법무부 산하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신청을 하면서 한국 사회는 찬반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난민 신청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대기중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 제주=최충일 기자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대기중인 예멘 난민 신청자들. 제주=최충일 기자

 반대론자들은 난민이 성폭력 등 사회 안전을 해치고, 한국의 복지제도에 무임승차해 세금을 낭비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민이 먼저"라며 "구멍 많은 현행 난민법을 개정하고 가짜 난민을 즉각 추방하라"고 촉구한다.
 찬성론자들은 난민법과 유엔 인권협약 정신을 강조하며 "난민 반대 주장은 외국인 혐오"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사람이 먼저"라는 보편적 인도주의를 주장하면서 4%인 난민 인정률을 20% 수준까지 올려 난민을 더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 반대 시위 현장. 장세정 기자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 반대 시위 현장. 장세정 기자

 기자는 난민 신청을 한 상태에서 강도·살인을 저지른 이집트 국적의 불법체류자 모하메드(33)에 의해 형님을 잃은 경북 경주 시민과 지난달 20일 법원에 의해 난민 확정판결을 받은 가나 국적자를 각각 단독 인터뷰하고 관련 판결문을 분석해 봤다.
 경주역 근처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심의근(61)씨는 재작년 겨울 강도살인 사건으로 갑자기 형님을 잃었다. 그는 요즘 난민 얘기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2016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쯤. 심 씨의 형님(당시 65세)은 자신의 금은방에서 일하다 손님을 가장한 강도에게 오른쪽 뒷 목을 11cm가량 찔려 결국 숨졌다.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가 저지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형님을 잃은 심의근 씨(왼쪽)와 사건 당시 4분만에 신속 출동해 범인을 검거한 공로로 1계급 특진한 경주경찰서 소속 최경열 경위. 경주=장세정 기자

이집트인 난민 신청자가 저지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형님을 잃은 심의근 씨(왼쪽)와 사건 당시 4분만에 신속 출동해 범인을 검거한 공로로 1계급 특진한 경주경찰서 소속 최경열 경위. 경주=장세정 기자

 사건 발생 4분 만에 신속히 출동한 경찰이 입수한 폐쇄회로(CC)TV 화면에 따르면 이집트인 불법체류자 모하메드는 난민 신청을 한 상태에서 흉기를 들고 금은방에 들어가 피해자를 찔렀다. 모하메드는 귀금속(4600만원 상당)을 쓸어담던 중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키 185cm의 건장한 젊은 모하메드가 계획적으로 키 156cm의 왜소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된 대구지법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이 판결은 대구고법을 거쳐 그해 12월 말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됐다.

지난 14일 열린 서울 광화문 난민 반대 시위 현장에는 20대 대학생들도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4일 열린 서울 광화문 난민 반대 시위 현장에는 20대 대학생들도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모하메드는 한국에 난민법이 제정돼 시행에 들어간 지 불과 13일째 되는 날 30일짜리 관광 비자로 입국했다. 체류 기간이 만료되자 2014년 9월 서울출입국관리소(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인정을 받지 못하자 이의 신청을 거쳐 2015년 12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모하메드는 2015년 11월 부인과 딸 둘을 입국시켰고, 이들은 강도살인 사건 열흘쯤 뒤인 2월 27일 자 출국 항공권을 예약한 상태였다. 강도·살인을 저지르기 하루 전에는 이집트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생활비와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난민 신청한 불법체류자에 의해 졸지에 형님을 잃은 심 씨는 "모하메드야말로 전형적인 가짜 난민이다. 정부가 가짜 난민을 제대로 가려냈다면 형님이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통탄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 반대 시위 현장에 가족 단위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난민 반대 시위 현장에 가족 단위 참석자들도 눈에 띄었다.

 심 씨는 "경주는 경북에서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가장 많고 밤에는 길에 나가기 겁날 정도로 불안하다"며 "정부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난민법을 신속히 개정하고 가짜 난민을 가려내 즉시 추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작년 발생한 이 사건은 경찰의 신속 출동과 현장 검거의 미담 사례로만 소개됐을 뿐 난민법의 구멍을 이용한 모하메드의 자세한 행적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모하메드는 불법체류 기간에 난민신청을 해 강제 추방을 면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았고 취업도 할 수 있었다. 모하메드의 사례를 보면 난민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외국인 혐오론으로만 쉽게 몰고 가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법원에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확정 판결을 받은 가나 국적자 다니엘씨. 사진=장세정 기자

지난달 법원에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확정 판결을 받은 가나 국적자 다니엘씨. 사진=장세정 기자

 반면 2년 1개월 만에 간신히 난민 확정판결을 받아낸 가나 출신 다니엘(49)씨의 사례를 보면 난민의 어려운 처지를 무작정 외면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다니엘은 가나에서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아버지와 동생이 납치·살해당했다. 다니엘 자신도 납치·감금·폭행을 당했으나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5개국을 거쳐 2010년 11월 열흘짜리 단기방문(C-3)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체류 기간이 끝난 이후 기독교 신자인 그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경기도 파주에 있는 가나 출신 기독교인 공동체의 도움으로 별도의 경제활동 없이 생활했다.
 다니엘은 한국에 입국한 지 한참 뒤인 2016년 5월에야 서울출입국사무소를 상대로 "귀국하면 정치적 박해를 받을 게 뻔하다"며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 사무소는 "(다니엘은) 한국에 입국하고도 곧바로 난민 신청을 하지 않고 5년 5개월간 불법체류를 하다 뒤늦게 난민 신청을 한 것을 보면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난민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건물 앞에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몰려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건물 앞에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몰려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다니엘이 제기한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7월, 서울고법은 지난달 20일 각각 "정치적으로 박해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다니엘의 손을 들어줬다. 상고가 없어 이 판결은 확정됐다.
 기자는 다니엘을 직접 만나 난민 인정 과정에 대해 질문했다.
 -한국보다 복지제도가 좋은 유럽도 있는데 굳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유럽은 초청장을 요구했다. 남아공 등에서는 난민 신청이 힘들고 기회가 없었다. 축구선수 박지성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
 -난민 신청한 상태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았나.
 "아니다. 밥을 굶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물 한병 사 들고 편의점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건물 앞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하고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제주 출입국외국인청 건물 앞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하고 있다. 제주=최충일 기자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후 가장 달라진 것은.
 "안전해졌다는 점이다. 난민신청자의 임시체류 G-1 비자가 난민 인정자의 F-2 비자로 바뀌면 일도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난민 찬반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난민 신청했을 때 진실을 말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도, 믿지도 않아 너무 힘들었다. 인내심을 갖고 (난민 신청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한국과 가나의 문화 차이는.
 "음식이 아주 다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접해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덜 개방된 느낌이 들었다."

난민 반대 시위자들은 안전을 요구했다.

난민 반대 시위자들은 안전을 요구했다.

 모하메드와 다니엘의 사례를 보듯 2013년 7월 1일 제정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난민 문제는 이미 한국 사회 깊숙이 들어왔다.
 무조건적인 난민 배척이나 혐오는 부적절하지만, 동시에 감상적 인도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몰려온 가짜 난민에 의한 제2의 강력 사건도 막아야 하고, 인도주의로 포용해야 할 진짜 난민을 잘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민 문제를 대하는 한국 사회는 아직 서툴고 미숙하다. 시스템적으로 난민의 옥석을 판별하는 수준을 최대한 단기간에 신속히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아직도 아랍어 통역 요원이 부족하고, 이슬람 등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 얕다. 법원 판사들이 최근 뒤늦게 난민법을 공부한다고 한다.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안전과 일자리 등 한국사회의 문제를 난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정부가 더 충실히 국민에게 진상을 설명하고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미 71만명의 국민이 공감을 표시해 이제 정부가 답변시한(8월 13일) 전에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답을 내놓을 차례다.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난민 문제 국민토론회 참석자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오종택 기자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난민 문제 국민토론회 참석자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오종택 기자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본부장은 "난민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적 자세나 무조건적 반대 모두 옳지 않다"며 "허위 난민을 신속히 가려내고 난민 유입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 갈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8월 13일 전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제주 입국 예멘 난민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난민 찬반 격론 #난민 신청 이집트인이 강도살인 #유가족 "가짜 난민 가려냈어야" #법원서 난민 판결 받은 가나인 #"한국 사회는 덜 개방된 느낌"


※김혜원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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