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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초빙? 완전 간선제? 서울대 총장 선거 방식 둘러싼 고민들

중앙일보

입력

“이번에 자신이 총장이 되면 본부의 중요 보직을 맡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교수들만 후보마다 수십명씩이라고 한다.”

한 서울대 교수가 강대희 최종 후보자가 6일 성추행 의혹 등으로 사퇴한 뒤 학교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한 말이다. 그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서울대 총장 선거 방식이다. 사퇴한 후보 비판에만 집중하지 말고 서울대 총장 선거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 등의 지지를 받고 이사회의 투표로 최종 선출된 총장 후보자가 성추행 의혹 등으로 사퇴하면서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선 “총장 선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덕성이나 학자로서의 자질이 주요 평가 항목이 되지 않는 현재의 선거 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다. 하지만 총장 초빙제나 완전 간선제 등 언급되는 대안들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 역시 상당하다.

9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총장 선거 파행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9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총장 선거 파행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마당발형 총장만 나오는 선거 방식”

현재의 서울대 총장 선거 방식은 직선제와 간선제의 성격이 복잡하게 혼합돼 있다. 교수와 학생 등을 포함한 구성원들의 투표와 교내외 인사들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의 평가 결과를 합해 후보자들의 순위가 정해진다. 이사회는 이렇게 추려진 후보자 중 최종 1명을 선출할 권한을 가진다.

많은 교수들은 “간선제라고는 하지만, 우선 구성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료 교수들과 총학생회, 노조 등에 많은 혜택을 약속하며 공수표를 남발하는 후보들만 나오는 상황”이라고 비판한다. 한 서울대 평의원회 소속 교수는 “이번 선거는 교수들과 악수한 횟수만큼 표가 생기는 선거였다. 이런 방식으로는 매번 ‘마당발형 총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유명 대학 중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 곳은 거의 없다. 이사회가 책임을 지고 학교에 도움이 될 만한 총장 후보군을 만든 뒤 선출하고, 검증의 책임도 지도록 하는 완전한 간선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나친 직선제 선호가 과열과 검증 실패 불러와”

지난 5월 서울대 구성원들이 총장 후보자들에 대한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지난 5월 서울대 구성원들이 총장 후보자들에 대한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이사는 “이사들 사이에서도 이번에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1위를 한 후보를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2위였던 성낙인 총장을 이사회가 선출한 이후 임기 내내 비판을 받으며 학교를 이끌 동력을 잃은 것을 모두 지켜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이사회의 최종 투표 날 각 대학의 학장들이 모인 서울대 학원장회는 15명의 이사에게 “학교 구성원들의 결정을 존중해 선택을 해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 사실상 2위나 3위 후보를 뽑지 말고 총장추천위원회에서 1위를 한 후보를 선출해달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완전 간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성원들은 직선제가 가져오는 선거 과열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실제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총장추천위원회에는 경쟁 후보들의 공약 남발을 비난하고, 각종 의혹을 제보하는 익명의 메일들이 다수 접수됐다고 한다. 사퇴한 강 후보자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다른 후보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제보들도 많았다고 한다. 한 총장추천위원회 관계자는 “사실관계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한 내용도 많은 등 투서가 난무하는 선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학생회 등 학생들은 민주화 시기부터 시작된 총장 직선제가 대학 사회에 필수라는 인식 때문에 간선제 성격이 강해지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이사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간선제에 반대하는 교수들도 있다.

“석학 초빙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 서울대 보직 교수는 “미국 등 교육 선진국의 유명 대학에서 많이 하는 총장 초빙제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며 “이미 해외 대학의 총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 등 외부 인사도 모셔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독립적인 총장초빙위원회를 구성해 적합한 총장 후보를 물색한 뒤 자체 평가와 검증을 한 이후 초빙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서울대 이사는 “훌륭한 총장을 우리가 찾아 데려오자는 발상의 전환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청탁과 투서가 난무하는 우리의 대학 사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매번 총장추천위원회 위원들은 여기저기에서 ‘누구에게 좋은 점수를 달라. 누구를 고려해 봐라’ 등 거절하기 힘든 청탁들이 수없이 받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적인 총장초빙위원회를 구성하기도 쉽지 않고, 구성해서 적합한 후보를 선정한다고 해도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한편 오는 20일부터 총장 공석 사태를 맞은 서울대는 박찬욱 교육부총장의 임기를 연장해 총장 직무대행을 맡기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렇게 되면 박 부총장은 서울대 교수협의회·평의원회·학원장회로 구성된 3자 협의체와 함께 향후 총장 선거 방식을 논의하게 된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이 총장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총학생회와 대학원 총학생회, 노동조합도 3자 협의체에서 의결권을 갖고, 후보 검증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서울대 총장 선출 방식의 변화

1946년 개교 당시 서울 동숭동의 서울대 문리과 대학의 모습. [사진 서울대]

1946년 개교 당시 서울 동숭동의 서울대 문리과 대학의 모습. [사진 서울대]

서울대의 초대 총장은 미군이 맡았다. 해리 엔스테드(Harry B. Ansted) 미 해군 대위는 1946년 7월 13일 서울대가 미 군정의 ‘국립서울종합대학안’에 따라 공식 출범하면서 초대 총장이 됐다. 이후 사실상 정부가 총장 선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80년대 민주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직선제 논의가 시작됐다. 91년부터는 직선제 선출 방식이 도입돼 교수들이 투표를 통해 총장을 뽑았다.

2011년 서울대가 법인화되면서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하는 간선제로 다시 제도가 바뀌었다. 학내의 총장추천위원회가 평가를 통해 후보들을 추천하면 이사회가 투표로 그 중 1명을 선출하고, 교육부 장관이 임명 제청,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2014년 제26대 성낙인 총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사회의 선택을 받아 선출됐다.

1987년 제18대 조완규 서울대 총장의 취임식. [사진 서울대]

1987년 제18대 조완규 서울대 총장의 취임식. [사진 서울대]

이번 제27대 총장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학생들과 부설학교 교원들도 선거에 참여했다. 지난 선거에서 교수 등의 투표를 반영한 총장추천위원회의 평가 결과 2순위였던 성 총장이 이사회의 선택을 받아 당선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학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학교 내외의 비판에 따라 서울대가 선거 제도를 일부 바꾸면서, 총장추천위원회의 후보 평가 과정에서 학생과 부설학교 교원들도 투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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