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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광형의 퍼스펙티브

기득권 저항 적은 북한, 4차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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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통일 로드맵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에는 모처럼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감성에 젖어 금방 큰 변화가 올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성에만 치우쳐서는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도로 #60명 연구진이 통일 전략 마련 #30년 후 남북 소득 1:1 목표로 #4차산업혁명·통일준비 동시 추진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북한에는 없는 만큼 #북한은 3차 산업혁명 건너뛰고 #4차산업혁명 바로 진입하게 해야 #4세대 대신 5세대 통신망 구축하고 #자율주행자동차용 도로 만드는 등 #30년 동안 단계별로 진전시키면 #한반도 통일 준비 완료할 수 있어

감성이 앞서면 이제 피어오르는 통일의 불씨를 꺼트릴 수도 있다. 감성의 힘을 원동력으로 하되, 냉철한 이성으로 추진해야 한다. 필자가 소속된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은 이러한 이유로 통일 준비 전략을 수립하기로 했다. 특히 21세기 대한민국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결국 우리는 통일 준비와 4차 산업혁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해 60명의 연구진이 구성됐다. 미래학회도 여기에 참여했다. 30개 분야를 선정, 분야별로 토론·연구·집필·수정·검토를 마쳤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각계 전문가들이 흔쾌히 참여한 것은 민족적 염원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북 소득 수준 1:1 목표로 준비

우리는 단기간에 통일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단계별로 차근히 준비해 2048년에 준비가 마무리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 동질성은 훼손되고 생활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당장 국제 환경이 허락한다 해도 통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먼저 남북 주민의 개인별 소득 격차가 너무 크다. 개인별 소득 비율이 약 20대 1이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소득이 연 3198만 원인데 반해 북한 주민의 소득은 146만원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통일은 민족 동질성이 회복되고 소득 수준이 비슷해져 통일 시에는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방식이다. 준비 과정에서 민간 기업과 국제기구, 외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한다. 평화만 정착되면 미래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우리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주변 강대국들의 국제 정치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도 국제관계 역학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혹시 지금 남북이 힘을 기르고 합의하여 통일하겠다고 해도 동북아 국제 정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 우리가 할 일이 있다. 묵묵하고 담대하게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놓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 준비가 완료되는 시점을 2048년으로 상정했다. 준비가 완료되면 국제 정세 변화를 기다릴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48년을 향한 4단계 통일 준비

우리는 아래와 같이 4단계에 걸쳐 통일을 준비한다는 로드맵을 세우고 전략을 세웠다. 단계별로 목표와 실행계획을 포함하려 노력했다.

▶ 1단계(2018~2027): 경제 협력과 자유 왕래 (남북 1인당 소득 비율 20:1에서 10:1로)

▶ 2단계(2028~2037): 단일 경제권과 자유 무역(남북 소득 비율 5:1로)

▶ 3단계(2038~2048): 1국가 2체제와 단일 화폐(남북 소득비율 2:1로)

▶ 4단계(2048~): 통일과 1국가 1체제(남북 소득 비율 1:1로)

앞으로 30년은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파괴적 혁신이 산업과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결국 우리는 두 가지 변혁을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한반도 통일 준비와 4차 산업혁명 대비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향을 공유하며 준비했다.

▶ 한반도 내부적인 준비(남북 격차 해소와 동질성 회복)

▶ 주변국과 협력하여 통일 분위기 조성(통일이 주변국에 주는 장점 강조)

▶ 4차 산업혁명과 특이점 시대의 미래사회 구현

특이점 시대의 남북한 개발 협력

특히 2048년에는 인공지능의 지능이 인간을 추월할 것이라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기이다. 이때가 되면 우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방법을 터득해야 하고, 동시에 남북 주민들이 공존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대비하여 남한은 4차 산업혁명을 착실히 준비하고, 동시에 북한의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북한은 아직 3차 산업혁명이 완성되기 이전의 산업사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테스트 베드라 생각할 수 있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득권의 저항이 적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지역에는 3차 산업혁명인 정보혁명을 건너뛰고 직접 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정보통신분야에서 4세대 정보통신망을 깔지 말고 직접 5세대 통신망을 구축, 세계 최초의 5G 정보통신 테스트 베드를 건설해야 한다. 유선 전화처럼 구시대 유물들은 건너뛰어야 한다. 그리고 도로 건설도 그냥 기존의 도로를 설치하면 안 된다. 각종 센서와 5G 통신이 결합한 스마트 도로를 건설하여 자율주행자동차 시대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시작해야 한다. 길거리에 휘발유 주유소도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다.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 충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북한 지역에 건설하는 도시들은 기존 도시로 만들면 안 된다. 처음부터 스마트 도시로 설계하여 첨단 기술이 거주자에게 편의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세계적 시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전력 시스템도 기존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송전 시스템을 현재처럼 교류로 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는 직류로 할 것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전력 시스템은 스마트그리드로 깔아야 한다. 시간대별로 전기 요금을 차등화하여 피크타임 전력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더는 고립된 섬나라가 아닌, 국제적 에너지 협력 체계를 염두에 두고 동북아 그리드를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준비를 한꺼번에 하자는 것이 아니다. 30년 동안 단계별로 나누어 하나씩 진전시킨다는 전략이다.

한국의 모순이 북한에서 반복되지 않게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북한에는 만들지 않게 조언해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강력하게 보호하여 빅데이터 산업을 옥죄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의 우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한다. 원격 진료 사업을 허용하여, 한국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해야 한다. 창업을 가로막은 보증 제도를 개선하여 기술과 의욕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규제가 없고 우리가 기술과 경험으로 도와주면 북한 지역은 30년 후 가장 앞서가는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성장에 따른 모순과 부작용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지나친 대기업 집중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예방해야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커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노동 이중구조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공교육이 내실화되어 사교육에 몰리지 않게 한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헬조선이나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청년들이 희망을 갖도록 유용한 교육과 지원책이 주어져야 하겠다. 지금부터 교육에 노력하고 투자하면 30년 후에는 확실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민족의 동질성 확보를 위해서는 방송정보통신의 매개체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남북은 방송 송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상호 TV를 시청할 수 없다. 초기 간접 교류 단계에서는 남북 프로그램 공동 제작이나 프로그램 교차 구매, 인적 교류 등을 시작한다. 방송 인프라를 통합하는 직접 교류 단계에서는 통일된 송출 방식 또는 이중적인 방식으로 상호 시청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송 방식 통합 이전에도 초고속 통신망이 구축되면 인터넷 TV 시청으로 방송 송출 방식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 문화와 언어의 통일을 위해서는 상호 방송 시청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통일의 모습

우리는 통일 준비 전략을 수립하면서 미래 통일 국가의 국호와 수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봤다. 이것은 우리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미래전략대학원 학생과 졸업생들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남북이 상호 동의할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98명이 응답했는데, 아래와 같은 의견들이 눈길을 끌었다.

1. 통일 국가의 국호: 고려, 고려연합국, 고려공화국, 고려민국, 고구려, 대한연합국, 한조, 조한 등

2. 영어 국호: Corea, Republic of Corea, United States of Corea, Korea 등

3. 통일 국가의 수도: 개성, 파주, 철원, 서울-평양 공동 수도 등

4. 화폐: 원, 환, K(암호화폐) 등

5. 국가: 남측과 북측 음악가들이 모여 작사·작곡. 통일 전에도 국제 경기에서 남북 단일팀의 응원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단일 응원가를 작곡해 사용(조용필과 현송월의 공동 작사·작곡도 좋을 듯).

6. 국기: 한국의 태극과 북한의 별을 결합한 모양을 고려할 수 있음

모든 일은 상호 이해와 합의에 따라 진행한다. 한국이 주도해 진행하는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특히 북한 개발의 주체는 북한이 되고 우리는 돕는 입장이 돼야 한다. 평화는 상호 합의에서 오고, 우리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준비된 통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이광형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