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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 박범계 "당대표 되면 문 대통령에 소주 사달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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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 

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를 뽑는 8ㆍ25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로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박범계 의원(재선ㆍ대전 서을)이었다. 물밑에서 거론되는 후보는 많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박 의원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후 열흘이 지나도록 다른 후보의 공식 발표는 아직 없다. 궁금했다. 다른 후보와 달리 그가 서둘러 전당대회에 뛰어든 이유는 뭔지. 그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0일 박 의원을 밀착마크했다.

오전 9시 30분, 서울 영등포 캠프 사무실에서 회의를 마친 뒤 국회의원 회관에 들어서는 박 의원에게 곧장 질문을 던졌다.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의원 회관으로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의원 회관으로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서둘러 당 대표에 나선 이유가 뭔가.
“출마를 결심한 이상 다른 변수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난 좌고우면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변수라면 ‘친문재인계 단일화’를 말하나.
“그렇다. 그리고 지지세력이 있고 공약도 준비돼 있었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내가 (후보들 중) 상위권이니까 (웃음). 안 그러면 죽는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지만 묘한 긴장감도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정치권의 판세 분석을 굳이 신경써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얼마나 주문을 외우는지 모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박범계 의원의 방에 걸린 초상화. [중앙포토]

박범계 의원의 방에 걸린 초상화. [중앙포토]

의원회관의 사무실에는 2개의 큰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하나엔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한 눈에 정리해 놨고, 다른 한 쪽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관계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간사를 맡았던 흔적이었다. 박 의원은 “저걸 보며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출마선언문에 특별히 새로운 공약을 담지는 않았던데.
“많은 사람들이 약속했지만 실현이 되지 않았다. 난 온라인 네트워크 정당을 3개월 내에 실현하겠다고 못박았다. 또 당 대표가 되면 ‘메시지 과잉’인 상황을 고치겠다. 당 대표가 스타가 되려고 하면 안된다.”
원내대변인과 수석대변인, 최고위원 등 메시지를 생산하는 자리를 거쳐놓고 ‘메시지 과잉’이라고 해도 되나.
“당 대표, 원내대표, 수석대변인, 원내대변인의 메시지가 한 기사에서 동일하게 취급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당 대표의 메시지는 최대한 자제하되 묵직하고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표가 된다면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다.”

박 의원과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날 오전 그의 일정은 30분 단위로 꽉 짜여 있었다. 그는“더 바빠져야지”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박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그가 걸음을 재촉해 닿은 곳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해외은닉재산 환수,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였다. 민주당 국민재산찾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당 대표 선거 때문에 바쁘실텐데 와주셨다”며 박 의원을 소개했다. 당내 각종 특별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박 의원은 틈이 나는대로 토론회를 찾아 동료 의원들과 당원들을 만난다고 했다. 다음 일정을 향하는 박 의원의 차에 함께 타 질문을 이어갔다.

당 대표를 하기엔 재선 의원 경력이 짧다는 지적이 있다.
“선수(選數)로 결정할 거면 뭐하러 전당대회를 여나. 재선 의원이지만, 입법ㆍ행정(청와대 민정2ㆍ법무 비서관)ㆍ사법(판사) 3부를 모두 경험한 의원은 나 밖에 없다.”
친문계 의원 모임인 ‘부엉이 모임’이 논란이 됐는데.
“나는 모임의 핵심은 아니다. 그래서 출마 선언을 먼저 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미 3개월 전부터 전당대회가 다가오면 (당 대표 후보 단일화 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그때부턴 일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내 말이 맞았고 해산에 이르지 않았나.”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대통령을 앞세운 패권 정치가 과거 친박계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친박은 국정농단 과정을 비호하고 방어했던 단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시 모색하는 친문은 언젠가 있을 수 있는 위기 요소를 전망하고 대응하는 차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도덕성과 청렴에 관해선 진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최근 대통령과 연락한 적이 있나.
“없다. 하지만 내가 당 대표가 되면 소주 한 잔 달라고 연락드릴거다. 그 정도 관계는 된다고 생각한다.”(박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밑에서 민정2비서관을 지냈다.)
법무부 장관 후보로 언론에서 거론됐다. 청와대의 의사 타진이 있었나.
“공식적으로 제안받은 건 없다. 언론을 통해서만 봤다. 제가 민정2비서관을 할 때부터 검찰 개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왔기 때문에 언론과 국민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최순실 국정조사 때 ‘박뿜계’라는 별명으로 화제 또는 논란이 됐었다.
“그 사건(지난 2016년 12월 국조특위 4차 청문회를 진행하던 박 의원이 생중계 중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고 참지 못한 일) 당시 저도 모르게 뿜고 속으로 ‘죽었다. 이걸로 박범계 정치 인생이 끝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 앞에서 뿜은 걸 오히려 시원하게 생각하시더라. 시민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걸 보면서 정치에 일종의 ‘역설의 미학’이 있다고 느꼈다. 그 때 대중정치인의 길에 한 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쌍용차 고(故) 김주중 조합원 빈소를 찾아 대화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박범계 의원이 10일 오전 쌍용차 고(故) 김주중 조합원 빈소를 찾아 대화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국회를 출발한 차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멈춰섰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차 해고자 고(故) 김주중 씨의 빈소가 차려진 곳이었다. 조문을 마친 박 의원은 빈소에서 30분이 넘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박 의원은 선거용 현수막에 스스로를 ‘유능한 혁신가’로 적었다. 당원들에겐 “심장을 춤추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촛불혁명 이후 급격히 불어난 70만여 명의 당원은 (이전과는) DNA가 다른 당원들”이라며 “과거 동원의 대상, 박수부대, 줄세우기의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현재의 당원들은 스스로 당과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어하는 주체적인 당원”이라고 했다. 춤추는 것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가 과연 당원들 심장을 지배하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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