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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그림 속의 'POP'…팝아트의 시작이 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8)

팝아트(Pop Art)가 우리 곁에 온 지 반 세기가 넘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외면한다. 팝아트는 광고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1922~2011)은 1956년 미국의 광고지를 오려 붙여 ‘오늘날의 가정을 그토록 멋지고 색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리처드 해밀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1956년 콜라주 작품

리처드 해밀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1956년 콜라주 작품

광고와 산업디자인 일을 했던 해밀턴은 현대 미술의 뿌리가 된 마르셀 뒤샹의 영향을 받는다. 뒤샹은 이미 있는 사물도 새로운 개념으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예술가다. 해밀턴은 광고지 사진도 미술 재료가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피카소의 영향으로 오려 붙이는 콜라주 미술 기법을 적용했다.

해밀턴의 작품을 보면 미국의 획기적인 가전제품 발명에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은 거의 이 무렵 발명됐다. 해밀턴은 가전제품 얼리 어답터였다. 작품을 보면 최초 방송용 테이프 녹음기와 텔레비전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진공청소기의 긴 줄이 늘어져 있다.

그 끝에는 하녀로 보이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있다. 밝은 현대식 가구로 꾸며진 거실에 옷을 벗은 두 남녀가 독특한 자세로 있다. 남자는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듯 서서 한 손에 큰 사탕을 들고 있다. 사탕에는 POP라고 쓰여 있다. 이에 착안해 비평가 앨러웨이가 이 작품을 팝아트라 불렀다.

1950년대부터 새로운 기계문명으로 가사노동에서 하녀가 사라졌다. 이런 많은 소비재를 광고하는 것이 요구되고, 이 시대 번영은 소비가 미덕이며 애국으로 표현되던 시대였다. 해밀턴은 광고 일을 경험했기에 대중매체로 인해 도시 문화가 변할 것에 주목했다.

일상의 세속적 사물을 그린 17세기 정물화

20세기 현대사회에 일상의 사물이 미술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일상이 어디에서, 언제부터 미술에 들어왔을까? 17세기의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였다. 17세기 이전에는 종교화, 역사화, 인물화가 그려졌다.

생활 주변 평범한 일상들은 세속적이라 그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동서양이 비슷했다. 그런데 무역으로 돈을 모은 신흥 부르주아와 귀족 사이에 정물화가 유행했다. 일상의 사물이 미술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18세기 네덜란드의 미술사학자 후브라켄이 정물화라 이름을 붙였다.

피터 클라스 <정물>, 1643

피터 클라스 <정물>, 1643

피터 클라스가 그린 ‘정물’에는 화려한 은주전자와 접시 위에는 가재요리, 빵 등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반쯤 채워진 유리잔, 옆에 놓여 있는 시계 등은 명성, 부, 아름다움, 인생이 덧없음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 없는 해골, 촛대, 꽃 등 사물도 영원한 것은 없고 헛되다는 것을 상징할 뿐이다. 이것은 기독교 영향이다.

여기 보이는 사물은 당시 귀족과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혈안이 되어 수집하던 호사품이나 진귀품이다. 이를 통해 물질적인 축복에 감사하면서도 기독교의 영원한 가치에 대해 잊지 않았다.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 사물을 실물 크기로 그리고 사물 뒤의 배경을 그림자로 그렸다.

이처럼 일상의 사물을 대하는 가치관이 17세기 정물화와 해밀턴의 팝아트가 다르다. 과거에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그렸고, 현대에는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가전제품에 대해 멋지고 색다르다고 표현하고 있다.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 196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 196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해밀턴은 모든 예술은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대중가수인 엘비스나 피카소 사이엔 서열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사회는 TV가 추상표현주의 미술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했다. 해밀턴은 유명 가수가 연행되는 신문의 사진으로 ‘징벌하는 런던’을 만들었다. 이처럼 정치 이슈 등을 사회문제를 예술 영역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마크 로스코’전 전시 장면. 세 점의 추상화가 관객을 친밀하게 둘러싸도록 전시장을 구획지었다. 가운데 작품은 ‘무제’(1949·206.7x168.6㎝). 로스코는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사진 코바나컨텐츠]

‘마크 로스코’전 전시 장면. 세 점의 추상화가 관객을 친밀하게 둘러싸도록 전시장을 구획지었다. 가운데 작품은 ‘무제’(1949·206.7x168.6㎝). 로스코는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사진 코바나컨텐츠]

하지만 미국에선 팝아트가 다르게 나타났다. 미국은 숭고함을 말하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류였다. 미술계에 찬물을 확 끼얹은 팝아트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들의 환호 속에 미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배경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

1960년대 당시 미국은 케네디 정부에 의해 소비를 통해 경제가 부흥한다는 정책에 따라 사회가 움직여졌다. 대중매체는 이 사회 가치관에 따라갔다. 미국의 팝아트는 광고와 산업디자이너로 성공한 앤디 워홀을 통해 크게 부각됐다.

앤디워홀 <캠벨수프>, 1962

앤디워홀 <캠벨수프>, 1962

광고는 쉽고 단순화한 윤곽과 이를 강조한 선명한 색이 특징이다. 앤디 워홀은 광고의 포장 이미지를 그대로 작품으로 옯긴다. 캠벨스프, 브릴로 비누상자, 코카콜라 등 크기와 색상을 달리해서 말이다.

앤디 워홀은 말한다. “당신이 보는 게 전부다. 그 뒤에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17세기 정물화는 ‘당신이 보는게 전부가 아니고, 그 뒤에 상징하는 뜻이 있다’로 들리기 때문이다. 팝아트는 소비사회가 만든 예술이다.

클래스 올덴버그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2001

클래스 올덴버그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2001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예술이라는 노래가 나올 정도로 미국은 일상을 얘기한다. 청계천 광장에 있는 ‘스프링’ 조각으로 잘 알려진 팝아트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는 일상의 사물을 거대하게 만든다. 타자기, 욕실용구, 선풍기, 대형 햄버거, 아이스크림 등을 제작했다.

라우센버그는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화면에 채색하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생활 속 사물 자체를 올려놓는 큰 변화를 시도한다.

앤디워홀 <은색 차 충돌>, 1963

앤디워홀 <은색 차 충돌>, 1963

뒤샹은 이런 팝아트 흐름에 대해 그가 이미 했던 것을 손쉽게 의존하는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뒤샹 자신은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걸 강조했는데, 팝아트는 이미 있는 사물에서 미적인 것을 찾아 칭찬한다고 차이를 뒀다. 이것은 뒤샹이 미국의 팝아트의 큰 흐름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뒤샹의 지적과 달리 앤디 워홀은 ‘은색차 충돌(실버카 크러쉬)’로 자본주의 문제점을 담은 검은 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 일시적인 것에 가치

해밀턴은 현대사회 예술의 바람직한 특성에 대해 발표한다. 한마디로 과거의 미술 표현방식을 모두 흔들어 놓은 것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사진에 대해 대중적, 상업적이고 쉬운 방법이라 예술이 될수 없다고 했다. 이는 과거의 미술방식을 대변한 것이다.

해밀턴은 보들레르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로 사진을 오려 붙이며, 대중적인 것을 쉽게 상업적인 방법으로 만들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영원한 가치 대신에 일시적인 것에 가치를 뒀다.

위에서 보듯 영국의 팝아트와 미국의 팝아트는 다르게 나타났다. 그 사회가 만든 사회 경제적인 가치에 맞게 반영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술의 주제는 알든 모르든 사회가 만들어 놓거나 만들어가는 가치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에 맞게 예술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기에 동시대를 넘어가면 재현이 아닌 그림은 상징이 되고 이해하기 어렵다. 때로는 17세기 정물화처럼 재현된 작품도 그 시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어렵다.

자본주의가 허락한 소비사회의 예술이라는 팝아트는 21세기 정물화를 포함한다. 팝아트나 17세기 네덜란드 그림 뒤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다.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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