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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만큼 재미난 요리에 왕관을 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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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호 22면

세계 미식 가이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 가보니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의 테이스팅 메뉴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의 테이스팅 메뉴

다른 나라에 가면 한 두 끼 정도는 그곳에서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찾아 근사한 식사를 즐기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공신력 있는 리스트를 참고하게 되는데, 프랑스 타이어 회사가 만든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손꼽히는 것이 바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이하 월드 베스트)’ 이다. 2002년 영국의 ‘레스토랑(RESTAURANT)’ 매거진이 시작한 이 리스트는 전세계 1000여 명의 외식업 종사자와 셰프, 전세계를 여행하는 미식가들과 저널리스트가 18개월 이내에 방문한 레스토랑들 중 7곳을 선정함으로써 결정된다(이와 별도로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한 ‘Asia’s 50 Best Restaurants’가 이에 앞서 봄에 발표된다·중앙SUNDAY S매거진 4월 14일자 참조).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달 19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곳을 선정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위로 뽑힌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의 마시모 보투라(오른쪽) 셰프.

1위로 뽑힌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의 마시모 보투라(오른쪽) 셰프.

왜 빌바오인가라고 하면 이유가 있다. 빌바오가 속한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은 이른바 미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22개 레스토랑이 31개의 미쉐린 별을 땄다. 그래서일까. 이번 행사에서는 시상식만이 아니라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잘 활용한 사전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에서는 상을 받은 셰프들이 함께 하는 ‘#50 BEST TALK’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셰프들과 현대미술 작가, 건축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가벼운 세미나를 진행했다.

농업·원예 전공한 부부 셰프 식당 ‘싱글 스레드’ 주목

시상식 애프터 파티

시상식 애프터 파티

이날 빌바오 ‘유스칼두나 팰리스(Euskalduna Palace)’에서 열린 시상식 오프닝은 사뭇 엄숙했다. 전세계에서 모인 유명한 셰프들과 미식가들은 최근 세상을 떠난 3명의 거장을 애도했다. 지난해 작고한 현대 이탈리안 퀴진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아 요리학교인 알마(ALMA)의 전 교장 구알티에로 마르체시(Gualtiero Marchesi) 셰프, 올해 세상을 등진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폴 보쿠세(Paul Bocuse) 셰프, 마지막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지의 요리와 식재료 등을 방송에서 소개해 온 셰프이자 스토리 텔러 앤소니 부르뎅(Anthony Bourdain)에 대한 추모가 이어졌다.

행사 오프닝에서는 최근 세상을 떠난 세계적 셰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오프닝에서는 최근 세상을 떠난 세계적 셰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영예의 식당들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달라졌다. 각 부문이 차례로 발표됐는데 몇몇 눈에 띄는 이름들이 있었다. 우선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는 농업과 화훼를 전공한 뒤 일본 홋카이도와 영국에서 경력을 쌓은 부부 셰프의 ‘싱글 스레드(Single Thread)’가 꼽혔다. 이들은 일본의 가지와 호박 등 식재료를 직접 농장에서 키우고, 가이세키·스시·스키야키 등의 일본식 조리법을 통해 음식을 코스로 내주는 게 특징이다. 또 와이너리와 5개의 게스트룸을 직접 운영하는 특이한 시스템으로 식당을 운영 중인데, 개업 18개월만에 큰 영예를 안게 되었다.

‘엘 셀레 데 칸 로카’의 카탈로니아식 요리

‘엘 셀레 데 칸 로카’의 카탈로니아식 요리

2위를 차지한 ‘엘 셀레 데 칸 로카’의 조셉·조르다·조안 형제 셰프

2위를 차지한 ‘엘 셀레 데 칸 로카’의 조셉·조르다·조안 형제 셰프

올해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로는 피에르 에르메, 도미니크 앙셀의 뒤를 이어 프랑스의 파티시에인 세드릭 그롤레(Cedric Grolet)가 뽑혔다. 1985년 생의 젊고 감각적인 그롤레는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의 총애를 받으며 파리 르뫼리스 호텔의 수석 페이스트리 셰프로도 활약 중인 인물이다. 얼마 전 한국을 찾기도 했는데, 실제 과일을 3D 몰드를 이용해 완벽한 질감과 모양, 맛과 향을 갖춘 케이크로 구현해 낸다. 각각 다른 맛을 채운 주사위 모양의 큐브를 쌓은 루빅 큐브 케이크도 유명하다.

1위는 이탈리안 식당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

3위에 오른 프랑스 ‘미라주르’ 식당의 지중해식 요리

3위에 오른 프랑스 ‘미라주르’ 식당의 지중해식 요리

드디어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발표하는 시간. 영예의 1위는 이탈리아 모데나에 자리한 모던 이탈리안 식당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가 차지했다. 2016년에 이어 2년 만에 권좌를 탈환했다. 이곳은 클래식 요리에 장난기 넘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한 입 거리의 라쟈나라든가 모양이 흐트러진 디저트(제목은 ‘어머,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네’다)를 만드는 식이다. “요리란 맛만큼이나 흥미진진해야 한다”라 말해온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 셰프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도전이다.

'미라주르’ 식당 마 우로 코라그레코 셰프

'미라주르’ 식당 마 우로 코라그레코 셰프

하지만 그는 유머러스한 요리와는 달리 열정적인 사회활동을 벌이는 것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영혼을 위한 음식(Food for Soul)’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통해 노숙자와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한편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그의 저서 두 권이 곧 한국어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서 “이 스포트라이트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2위는 스페인 지로나에 위치한 ‘엘 셀레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가, 3위는 프랑스 멍통에 위치한 ‘미라주르(Mirazur)’가 받았다. 각각 스페인 북동부 카탈로니아 전통 음식과 프랑스 남동부의 리비에라 해안 지방에서 영감을 얻은 레시피로 지역색을 강조하는 것이 공통적이다.

4위를 차지한 뉴욕 ‘EMP’ 식당의 요리

4위를 차지한 뉴욕 ‘EMP’ 식당의 요리

그 뒤를 이어 미국 뉴욕의 ‘EMP(Eleven Medison Park)’가 4위를, 아시아 베스트 50  2018에서 1위를 기록한 ‘가간(Gaggan)’이 5위를 기록하며 동양권의 체면을 세웠다.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에 뽑힌 세드릭 그롤레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에 뽑힌 세드릭 그롤레

이 외에도 지난해보다 28개 계단을 뛰어오른 일본의 ‘덴(Den·17위)’, 새로 진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디스프루타르(Disfrutar·18위)’가 눈에 띄는 성적을 보였다. 둘다 각각 2016, 2017년도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되었던 루키들로, 이번에 그 내공을 드러낸 셈이다. 특히 일본의 모던 가이세키 레스토랑인 ‘덴’은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2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디스프루타’의 경우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전설의 레스토랑 ‘엘 불리’의 마지막 헤드 셰프였던 3명이 힘을 합쳐 오픈한 분자요리 레스토랑이다. 2014년 문을 열었는데, 오픈한 다음해에 바로 미슐랭 1스타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의 1위이자 월드 베스트 50에 오른 ‘가간’의 요리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의 1위이자 월드 베스트 50에 오른 ‘가간’의 요리

한국은 50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레스토랑 ‘밍글스’가 78위로 2년 연속 100위권 안에 진입해 가능성을 내비쳤다. ●

빌바오(스페인) 글 김혜준 외식 컨설턴트  사진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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