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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야유로 난장판…·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초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완·전세아의 시시콜콜 클래식(6)

16~19일 국내 초연한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춰 원시 제전을 형상화한 현대발레다. 복근을 드러낸 발레니노의 역동적인 군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제공=국립발레단]

16~19일 국내 초연한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춰 원시 제전을 형상화한 현대발레다. 복근을 드러낸 발레니노의 역동적인 군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제공=국립발레단]

‘봄’ 은 우리에게 따뜻함과 포근함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는 행복한 단어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러시아 이교도들의 의식을 그린 곡이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광활한 대지, 남자와 여자들이 춤을 추다가 음란한 자세를 취하며 짝짓기를 시작하고 부족 사이에는 위협적인 싸움이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원시 부족의 장로들이 이를 진정시키고 대지를 경배하는 의식인 <봄의 제전>이 시작된다.

소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의 태양신 숭배 의식 그려

1913년 5월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청중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극한의 리듬감과 복수심에 타오르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곳곳에서는 고함과 야유가 터져 나왔고 청중 사이에서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고 한다. 이날의 소동으로 이 작품은 큰 주목을 받아 인기를 끌게 된다. 때문에 훗날 이날의 사건이 계산된 노이즈 마케팅이었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첫 장면을 보면 ‘봄의 제전’의 유명한 초연 대소동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영화감독은 샤넬의 후원으로 거의 모든 자료를 동원해 클래식과 발레 역사상 가장 소란스러웠던 이 날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샤넬의 마지막 회고록에 스트라빈스키와의 관계가 있었다는 짧은 회고를 반영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스트라빈스키는 샤넬의 재정적 후원으로 가족과 함께 샤넬의 집에 지내기로 한다. 스트라빈스키와 샤넬은 서로의 매력에 이끌려 연인이 된다. 서로를 통해 받은 예술적 영감으로  향수 '샤넬 No.5'와 '봄의 제전'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표작을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놓고 많은 논쟁이 있다.

‘봄의 제전’은 태양신에게 젊은 여자를 제물로 바친다는 간단한 내용에서 시작한다. 1부 ‘대지에 대한 경배(L’Adoration de la terre)’라는 제목으로 호른, 클라리넷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며 리듬과 선율이 변형되고 얽히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봄의 시작과 젊은 남녀의 춤은 스타카토로 이루어진 강렬한 현과 금관의 조합은 상당히 자극적이며 무뚝뚝한 느낌으로 주제 ‘봄’과는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소녀의 유괴와 유희. 음악은 팀파니와 금관 등을 역동적으로 사용해 긴박감을 조성하고, 플루트와 피콜로, 바이올린에 의한 선율의 변화로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제목에서 풍기듯 음악 자체도 매우 자극적이며 빠르게 진행된다.

바이올린이 느끼게 해주는 현의 암울한 반주 사이로 음산한 봄기운이 퍼진다. 신비로운 느낌의 오보에와 플루트, 바순은 차례대로 다양한 선율로 주제를 풀어헤친다. 음악은 점점 커지며, 금관과 팀파니가 함께 강인한 분위기로 바뀐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반주로 표현된 매우 음산한 분위기는 밤의 이교도를 나타내고 있다. 고즈넉하게 울리는 악기들의 음색 속 제사장의 밤이 연상된다.

변박자 리듬과 날카로운 불협화음은 소재만큼이나 파격

2부는 ‘희생’ 혹은 ‘제물’(Le Sacrifice)로 불리며 처음에는 리듬감이 자유분방하게 변화를 거듭하는 곡으로 팀파니와 목관 그리고 금관의 울부짖음은 거의 광기처럼 들린다. 상당히 난잡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매우 정교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전통적인 화성학적 선율이 아니라서 느끼는 불편함과 싸우듯이 달려드는 악기들의 선율로 음악은 원시적이며 야만성이 부각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장면은 강렬한 음악으로 시작되어 반복되는 특징적인 선율을 사용해서 영혼을 부르는 듯한 주술의 느낌이 가득 담겨 있다.

죽음을 묘사하는 악기들과 광폭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팀파니의 강한 타격으로 곡은 점점 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신경질적인 느낌의 트럼펫과 그 배경이 되는 저음의 현은 매우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피콜로 역시 다분히 공격적인 성향을 증가시키고 있다. 희생물이 죽자 이를 조상의 영혼인 태양신에게 바치는 장면을 묘사하며 음악은 막바지에 이른다.

이 곡은 관악기의 비중이 상당히 큰 오케스트라 곡이다. 관악기의 소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응집과 분출이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원시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변박자 리듬, 아울러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이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

봄은 어쩌면 새로움을 주는 대신 우리에게 제물을 요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박완 뮤지컬 배우, 전세아 크로스오버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듀서 cultureqo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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