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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저' 302g 초미숙아 사랑이의 기적...169일만에 생존 한계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랑이에게 모유를 젖병 수유하고 있는 사랑이 엄마 아빠

사랑이에게 모유를 젖병 수유하고 있는 사랑이 엄마 아빠

국내에서 가장 작은 크기로 태어난 초(超)미숙아가 생존한계를 넘어 169일만에 병원 문을 나섰다.

지난 1월 25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6층 분만장에서 체중 302g, 키 21.5cm의 국내에서 가장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 아이가 생존할 확률은 1% 미만으로 예상됐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를 잡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게 태어난 아이는 생사의 고비에서도 씩씩하게 버텨냈다.

 태어난지 이틀째 된 사랑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_20180127

태어난지 이틀째 된 사랑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_20180127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김기수ㆍ김애란ㆍ이병섭ㆍ정의석 교수)은 엄마의 뱃속에서 자란지 6개월 만에 302g의 초극소저체중미숙아(이하 초미숙아)로 태어난 이사랑(생후 5개월ㆍ여) 아기가 169일 간의 신생아 집중 치료를 마치고 12일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밝혔다.

400g 이하 체중의 미숙아가 생존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사랑이는 국내에서 보고된 초미숙아 생존 사례 중 가장 작은 아기로 기록됐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초미숙아(400g 미만으로 태어나 생존한 미숙아) 등록 사이트에는 현재 201명의 미숙아들이 등록돼 있는데, 사랑이는 전 세계에서 26번째로 가장 작은 아기로 등재될 예정이다.

사랑이 엄마는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지만, 임신중독증이 생겨 24주 5일만에 제왕절개로 사랑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태어난지 3개월 째 된 사랑이가 점차 안정을 찾고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해진 모습_20180416

태어난지 3개월 째 된 사랑이가 점차 안정을 찾고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해진 모습_20180416

사랑이는 심장ㆍ장수술 등 미숙아들이 흔히 받는 수술을 단 한 번도 받지 않고도 모든 장기가 정상적으로으로 성장했다. 사랑이가 만든 기적은 500g 미만으로 태어나 치료받고 있는 초미숙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kg 미만의 몸무게로 태어나는 미숙아들은 호흡기계, 신경계, 위장관계, 면역계 등 신체 모든 장기가 미성숙한 상태다.

출생한 직후부터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 미숙아 동맥관 개존증, 태변 장폐색증 및 괴사성 장염, 패혈증, 미숙아망막증 등의 미숙아 합병증을 앓게 되며, 재태기간과 출생 체중이 작을수록 이들 질환의 빈도는 높아지고 중증도 또한 높아진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아무리 작은 주사 바늘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길이가 아기의 팔뚝 길이와 비슷해 삽입 자체가 쉽지 않다. 또 단 몇 방울의 채혈만으로도 바로 빈혈이 발생하기 때문에 채혈조차 쉽지 않다.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너무 작기 때문에 수술조차 할 수 없어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렇게 작은 체중의 미숙아들은 투석기나 심폐보조기와 같은 의료 장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인공호흡기 치료와 많은 치료 경험을 통한 의료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다.

302g의 사랑이는 폐포가 완전히 생성되기도 전인 24주 만에 태어나 출생 직후 소생술을 통해 겨우 심장이 뛸 수 있었고, 기관지 내로 폐표면활성제를 투여 받으며 겨우 숨을 쉬는 등 생존 활동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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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째에는 몸속에 머금었던 양수가 빠지면서 체중이 295g까지 떨어져 생존의 한계를 넘나들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300g 이하에서는 생존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의료진들 모두가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주치의 정의석 교수를 비롯한 서울아산병원 신생아팀은 그 동안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쌓아 온 미숙아 치료의 경험과 노하우로 생존 확률이 1%도 채 되지 않는 사랑이의 생존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사랑이의 엄마와 아빠도 큰 역할을 했다.

미숙아 괴사성 장염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모유수유라는 말에 사랑이 엄마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유를 유축했으며, 출산 후 처음 한 달 간 몸이 불편한 엄마를 대신해 아빠는 매일 병원으로 모유를 가지고 와 사랑이를 응원했다.

사랑이는 미숙아 괴사성 장염이 발병하지 않았고, 600g 정도까지 자랐을 무렵에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적은 양의 산소만으로도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해졌다. 많은 위기 상황을 극복해내며 지금은 어느덧 3kg으로 건강하게 성장했다.

[사진4] 사랑이의 퇴원일 사랑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

[사진4] 사랑이의 퇴원일 사랑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

사랑이 엄마 이인선(42)씨는 “남편의 생일 날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게 된 첫 아이인라 가족들 모두 사랑이가 태어난 후 단 한 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중환자실 의료진 모두가 사랑이의 아빠, 엄마가 되어 사랑이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한 해에 태어나는 1.5kg 미만 극소저체중미숙아 수는 30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20여 년 전 약 천 명에 불과하던 것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 3년(2014~2016년) 동안에는 163명의 500g 미만 초미숙아가 출생했으며, 생존율은 28%로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최근 5년 동안 총 33명의 500g 미만 초미숙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의 생존율은 52%에 이르는 등 생존 한계에 놓인 초미숙아 치료 성공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랑이 주치의인 정의석 교수는 “손바닥 한 뼘도 되지 않는 사랑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작은 아이가 가쁜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니 그저 살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고, 위기 상황 때마다 사랑이 스스로 극복해내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특히 300g 정도 체중의 초미숙아가 단 한 차례의 수술을 받지 않고도 모든 장기가 정상이고, 미숙아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뇌실 내 출혈 또한 없이 온전한 생존을 이루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데, 사랑이의 경우 온전하게 퇴원을 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이 사랑이의 퇴원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이 사랑이의 퇴원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과장 이병섭 교수는 “최근 국내 출산율은 급감하는 반면, 산모의 고령화, 난임으로 인한 인공임신의 증가 등으로 미숙아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미숙아 치료 성공률도 향상되고 있다”며, “그렇지만 여전히 생존 한계 미숙아 치료에는 가족들의 사랑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헌신과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번 사랑이를 통해 국내 초미숙아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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