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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비박 서로 총질 … 한국당 없어지는 게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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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상수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 준비위원장(왼쪽)이 10일 준비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준비위는 주말까지 비대위원장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임현동 기자]

안상수 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 준비위원장(왼쪽)이 10일 준비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준비위는 주말까지 비대위원장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임현동 기자]

6·13 지방선거 후 한 달, ‘궤멸’이란 말까지 들은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혼돈에 빠져 있다. 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은 좀체 보이지 않고, 계파 갈등만 거세지고 있다. 의원총회장은 친박계-복당파의 싸움터나 다름없다.

지방선거 뒤 한 달 … 대구 민심은 #“이쁘다고 2번 찍어준 게 아니다 #콩가루당 비대위원장 누가 오겠나 #야당 힘 없으니 대구 무시할까 걱정 #웰빙 이미지 벗고 서민 보수 돼야”

혼란을 수습해야할 비상대책위원회도 구성이 난항이다. 위원장 선정부터 오리무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처럼 대국민 공모에 나섰지만, 중량감 있는 인사는 손사래 치고 엉뚱한 이들의 이름만 오르내려 “비대위원장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110석이 넘는 대한민국 제1야당 아닌가. 어느새 지리멸렬한 당으로 전락한 한국당을 지켜보는 대구의 심정은 어떨까. 6·13 지방선거에서 전국이 사실상 한국당에 레드카드를 꺼냈을 때 그나마 대구·경북(TK)만은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한국당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 대구의 지금 민심은 어떨까.

중앙일보는 지난주 토요일인 7일부터 사흘간 대구를 샅샅이 훑어봤다. 혼돈의 한국당을 지켜보고 있는 대구의 속내를 알고 싶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당, 이젠 지긋지긋하다”란 소리가 대다수였다. “내가 지난번에 왜 2번 찍었는지 정말로 후회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실망과 분노를 넘어 “걔들,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일종의 체념이었다.

7일 방문한 자유한국당 대구광역시당에 팻말이 걸려있다. 당사 앞에는 신문이 쌓여 있다. [성지원 기자]

7일 방문한 자유한국당 대구광역시당에 팻말이 걸려있다. 당사 앞에는 신문이 쌓여 있다. [성지원 기자]

대구에 도착한 7일 저녁, 대구 동성로에서 택시를 탔다.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하자 기사 유기선(65)씨는 느닷없이 정치 얘기를 꺼냈다. “민주당에 반발심이 들어서 한국당을 찍었다”면서 “이쁘다고 찍어준 게 아인데…저거끼리 싸우고 파나 나구고, 아이고 이젠 싹수가 아예 없다 아이가”라고 했다.

30분 내내 유씨는 민주당이 아닌 한국당을 비판했다. 본인도 이렇게 한국당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차에서 내릴 때쯤 유씨에게 “그래도 2020년 총선 때는 한국당 찍으실 거죠”라고 했더니 정색을 했다. “지금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한국당은 없어지뿌는 게 낫다. 이럴 거면 차라리 깡그리 헤쳐모여 각자 당을 세우든가 해야지.”

대구의 간판 서문시장에 들렀다. 음료수 장사를 하는 김정연(62)씨는 “옛날엔 보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보수라카는데, 요새는 대구도 많이 변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얼음통에 담긴 사이다를 불쑥 꺼내 “청와대에서 ‘이 사이다가 맛있다’카면 맛이라도 좀 봐야 하는데, 한국당은 ‘탄산은 안 좋다, 성분 검사해보자’카고 우쨌든동 티만 잡을라칸다”고 했다.

사실 6·13 선거에서 대구 표심은 예전과 달랐다. 한국당 권영진 현 시장이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대구시 지역구 의원(27석) 중엔 민주당이 4석을 가져갔다. 민주당이 비례가 아닌 광역의원 당선자를 낸 건 처음이었다. 기초의원 116석 중에서도 민주당은 50석을 가져갔다. 4년 전 13석에 비해 4배가량 증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광역단체장을 지켜 TK가 여전히 한국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저변에선 대구도 심각한 한국당 이탈현상을 빚고 있다. 당의 혼란 상황이 계속되면 이반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민들이 가장 염증을 낸 대목은 한국당의 친박-비박 계파 갈등이었다. 8일 동대구역을 찾았다. 역 앞에서 10년 넘게 분식집을 해 왔다는 김진용(58)씨는 “대구라고 한국당 찍어줬더니만, ‘네가 문제다’ 며 서로 총질하고 있지 않나”며 “옛날에는 초선이 정풍운동 하면서 개혁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지금 초선은 외려 쇼만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당 초선 의원들은 “중진은 정계은퇴해야 한다” “구시대를 매듭짓자”는 성명을 잇달아 냈다. 김씨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일부 인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내지 않았느냐”며 “염치가 있어야지”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국당은 혁신비대위로 당의 면모를 쇄신하겠다며 비대위 준비위까지 꾸린 상태다. 국민 공모를 통해 100명 안팎이 비대위원장 후보로 추렸다. 하지만 대구 시민들은 이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다.

반월당역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제갈운(56)씨는 “당이 콩가루인데 어찌 제정신이 든 사람이 들어오겠노”라며 “참신한 인물을 모시고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언제적 이회창에, 외과 의사 이국종이라니…. 그래가 우예 개혁을 한단 말이고”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9일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구를 찾았다. 구둣방을 하는 김복(70)씨는 “옛날엔 집권당이었지만 대구에 땡전 한 푼 떨어지는 게 없었다. 근데 인자 힘없는 야당이 됐으니 얼마나 더 (대구를) 무시하겠노. 이렇게 가면 한국당도 대구도 다 죽는다”고 했다.

수성구 범어역에서 열린 교육청 행사에 두 자녀를 데려온 학부모 김모(40·여)씨는 “부산 지역에서 ‘가덕도 신공항 짓겠다’고 설치는 걸 보니, 대구는 찬밥 다 됐구나 싶다”라며 “한국당이 점점 약해지는 거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기대를 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시 서문시장에 들렀다. 20년째 한약재를 팔아온 김성근(51)씨는 “썩어도 준치 아이가”라며 “여태 혼 많이 내주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한국당) 밀어준다”고 했다.

달성군 출신 택시기사 정의택(68)씨는 “한국당은 옛날 향수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라며 “잘사는 사람만 대변하는 웰빙 이미지 벗고, 서민 보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수성구 황금동에 사는 장기수(67)씨는 “한국당이 야당 아이가”라며 “죽으라꼬 정부 견제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 마음이 돌아선다”고 했다.

대구=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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