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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내 이웃 ‘자살 유가족’…돕고 지지하고 힘이 되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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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간다-김남중의 공감현장 

자살 유가족 김혜정씨(오른쪽 둘째)가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모임에서 셀카를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살 유가족 김혜정씨(오른쪽 둘째)가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모임에서 셀카를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살 유가족 10년간 최소 70만 명 #언제든 이웃이 될 수 있을 만큼 많아 #43%가 자살 고민, 자살 위험 4.5배 #정신적 고통 겪는 유가족 돌봄 절실 #예전과 다름없이 따뜻하게 대하고 #지지와 위로로 삶 지탱할 힘 줘야 #유가족도 용기 내 먼저 손 내밀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 놓지 말아야 #

자살은 남겨진 이들에게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안긴다. 한국에서 한 해 1만3000여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한 사람이 자살하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자살 유가족’이 5~10명이다. 지난 10년간 최소 70만 명이다. 자살 유가족이 언제든 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은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정신건강에 변화를 겪는다. 자살 유가족 돌봄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유가족 위원인 김혜정(52)씨는 9년 전 남편을 자살로 잃었다. 그의 곁엔 삶을 지탱하도록 힘을 주는 이들이 있다. 그날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오는 ‘과천 이웃들’과 김씨의 정체성을 알고도 편견 없이 다가와 준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이다. 그들의 소망은 같다. “돕고 싶고 지지하고 싶고 힘이 되고 싶어요.” 두 모임에 동행해 얘기를 들었다.

#위로와 정을 이어온 과천 이웃들
 지난달 26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식당. 40~60대 여성 여섯 명이 모였다. 서로 두 손을 맞잡거나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자살 유가족 김혜정씨가 과천에 살며 두 아들을 키울 때 함께했던 어린이집 엄마와 교사들이다. 2009년 남편이 세상을 버리기 이전부터 지금껏 변함없이 김씨의 곁을 지켜주는 이웃들이다. 김씨가 망원동으로 집을 옮긴 뒤에도 여전히 양쪽 동네를 오가며 만남이 이어진다.
 “그때도 월드컵 시기여서 우리 애들이 유독 축구를 많이 하며 놀았잖아요. 쉬는 시간마다 나가 뛰던 그 아이는 박지성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웃음꽃 가득한 대화의 중심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 회상과 안부다. 동네에서 함께 키운 자녀들이 이들을 잇는 가장 큰 공통분모니 그럴 만하다. 얘기는 이날 자리에 함께 못한 다른 이웃들 안부로 이어졌다. 김씨는 과천 이웃들을 “내 고통 이전에도 함께했고, 고통을 극심하게 겪을 때 함께했고,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살자 유가족 김혜정씨(왼쪽 셋째)와 과천 이웃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망원동 한 음식점에서 만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자살자 유가족 김혜정씨(왼쪽 셋째)와 과천 이웃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망원동 한 음식점에서 만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남편을 황망히 떠나보내야 했던 그 날 이후 자신을 붙잡아준 이웃들을 김씨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장례식장에서 이웃 엄마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서 ‘어디로 가지 말고 우리들이랑 언제까지나 어울려 살자. 힘들더라도 함께 살자’고 계속 말해 주었어요. 장지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무서워서 두 아들만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이웃들이 반찬도 만들어오고 음악도 틀어주고 잠도 함께 자준 걸 잊을 수가 없어요. 집에만 처박혀 살던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준 것도, 길을 가다 너무 고통스러워 그 자리에 오래 서 있곤 할 때 다가와 꼭 안아준 것도 이웃들이었어요.”
 이런 이웃들이 지금까지 연결되고 만남을 지속하는 게 김씨에겐 무엇보다 큰 위로와 힘이다. 김씨는 “이웃들이 나를 예전과 다름없이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김혜정씨(오른쪽 둘째줄)와 과천 이웃들이 만나 음식점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정동 기자

김혜정씨(오른쪽 둘째줄)와 과천 이웃들이 만나 음식점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정동 기자

 자살 유가족 김씨를 곁에서 지켜봐 온 이웃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김미애(64)씨는 “불행한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해외에도 같이 다녀왔는데 전혀 눈치를 못 챈 게 속상하고 어이가 없었다”며 “이웃들에게도 그 일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처음엔 유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지만 아픔을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갔다”고 말했다. 박영혜(43)씨는 “오히려 부담을 줄까 봐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려고도 했다. 시간을 갖고 유가족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 동네 친구가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남편과 저녁을 함께 했는데도 전혀 몰랐다며 지금까지 미안해한다”며 “먼저 떠난 남편과 나는 그런 이웃들에게 ‘이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미안해하지 마세요’란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의 빛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3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택가의 한 개인 연구실. 김혜정씨와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멤버 여섯 명이 모여 얘기가 한창이다. 동료 남정하(51)씨가 쓴 책 『화내는 엄마 불안한 아이』를 돌려보면서다. 대화법을 가르치는 기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는 동료 사이인 이들은 올해 초 김씨가 자살 유가족이란 사실을 알고 힘이 돼주고 싶어 자연스럽게 모임을 꾸렸다. 장혜정(50)씨가 자신의 연구실을 기꺼이 모임 장소로 내놨다. 단톡방명을 겸해서 모임 이름도 지었다.
 김씨에게 이들은 모임 이름대로 삶을 지지해주는 온기(溫氣)다. “자살 유가족인 나를 위한 모임이어서 그 관심이 고마웠고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이미 아픔을 가진 나에게 친구가 되자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색하고 망설였을 것도 같지만 서로 솔직한 마음을 확인하니 편견이 사라지고 함께하게 됐습니다.”
 전국 37곳에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가 운영하는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이 있다. 자살 유가족끼리 정기적으로 만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도움을 준다. 김씨에겐 매달 만나는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이 그런 자조모임인 셈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살 유가족이 아닐 뿐이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봤다.
 김씨의 정체성을 제일 먼저 안 사람은 남정하씨다. “사회 통념상 남편의 자살에 대해 입을 떼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처음 그 사실을 알고는 공감하면서도 아는 체 하거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죠. 지금은 전보다 더 반갑게 웃어 주는 사이게 됐어요.”
 고연선(49)씨가 말을 이었다. “혜정씨의 밝은 웃음 뒤에 그런 아픔이 있는지 알고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어두운 터널 속에 두면 안 되겠다 싶었죠. 경계가 없이 자연스럽게 대하고 같이 즐겁게 노는 친구로 울타리가 되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김씨가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현주(44)씨는 “당사자가 자살 유가족이라고 말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 그건 낙인이 아니지 않나. 옆에서 손잡아주고 함께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살 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 모임을 통해 김씨가 느끼는 생각은 다른 자살 유가족에게로 확장된다. “자살 유가족의 애도 과정이 정말 중요해요. 슬픔을 묻어두고 풀어내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이런 공감모임을 통해 내면의 생명력을 피워 올리고 평안한 관계를 확장한다면 고인과 누렸던 일상의 평화와 기쁨을 다시 느끼게 될 거라고 봅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은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2016년 기준 25.6명으로 OECD 평균(10~12명)의 두 배가 넘는다. 하루에 36명이 자살한다. 문제는 남겨진 유가족도 자살 고위험군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자살 유가족 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43.1%가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이 약 4.5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살 유가족 김씨가 한국자살예방협회 유가족 위원으로 있으면서 자살예방 활동에 적극 나선 배경엔 이런 암울한 현실이 깔려 있다. 그의 안타까운 토로를 따로 더 들어봤다.
 -자살 희생자와 유가족을 어떻게 봐야 하나.
 “자살 희생자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표현을 한다. 고통과 위기를 표현했지만 긴급히 사회안전망과 이어지지 못했고 예방 방법이 있는 데도 죽음으로 내몰렸기에 비극이다. 자살 유가족 또한 재난 상황에 놓여 탈출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고 실제로 희생자 위험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절실하다. 국가가 이들을 도울 원스톱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자살 유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지난할지라도 친인척, 친구, 동료, 다른 유가족, 전문가에게 지지받으면서 이전의 삶과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갑작스러운 자살 유가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슬픔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자조모임과 지지 그룹에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밀면 의외로 따뜻한 위로와 공감과 도움의 마음이 맞아 준다. 조금씩이라도 안정을 되찾아 가면서 자기만의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갖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거다. 그것이 자신을 돕고 서로를 돕는 방법이고 고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본다.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크게 자살예방에 기여하는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힘을 내어 지지와 도움을 요청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붙잡기를 바란다.”
 -자살예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 자살예방을 위한 지식을 온 국민이 의무적으로 배우고 익힌다면 자살로부터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다. 내가 지금의 자살 관련 지식을 예전에도 지녔더라면 남편을 살렸을 거라고 믿는다. 유가족들에게도 치유와 회복의 힘을 자각하게 하는 필수 요소다.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있는 만큼 시급하게 제도적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자살 유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자살 유가족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이란 걸 말해주고 예전과 똑같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게 중요하다. 따뜻한 위로의 말과 표정, 행동으로 진실한 마음을 전하면 유가족도 알고 고마워한다.”
 김씨에게도 자살은 그 말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덮고 싶은 그늘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함께 있어 주고 손을 잡아주고 마음으로 어루만져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해 주기를 소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