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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北에 당한 폼페이오 분노 트윗…"최대 압력" 트럼프보다 세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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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의 협상"→"북한 반응, 나도 의아했다"→"북한에 최대한의 압력"→"내가 강도면 전세계가 강도"
6~7일 평양을 방문한 뒤 8일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일정을 소화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 수위는 이렇게 높아졌다.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 감정의 기복은 그의 언어에서 여과없이 드러났다.

“선의”→“의아”→“최대한 압력”→“전세계가 강도” #폼페이오 순진했나 北 실체 알고 갈수록 분노 커져 #日정부 "회담에선 최대한의 압력 표현 없었다"설명 #트럼프도 안쓰는 표현,대북 경고 위해 일부러 트윗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6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6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선의, 생산적"
이틀간 도합 9시간에 걸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협상 뒤 7일 오후 4시 26분 평양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북한에 호의를 표시했다.

동행한 기자들에게 "복잡한 이슈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주요 이슈에서 우리는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생산적인, 선의의 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의’를 강조하는 표현이 특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 회담에 대해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했다"고 미국을 맹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의아"
도쿄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8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등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북한의 반응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털어놓았다.

“나도 (북한의 반응이)의아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됐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이뤄진 추상적인 합의들을 구체화하는 자리였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자신들의 구체적인 생각을 서로 나열하는 자리였다. 북한이 미국의 생각에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안된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엔 의아했고 왜 저러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전문가들의 분석들을 종합해보니 전형적인 북한의 협상전술이 아닌가 싶다. 미국으로선 짚을 건 다 집었다. 앞으로도 원칙을 갖고 해나갈 것"이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7일 밤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의아했지만, 이후 전문가들의 분석을 듣고 나서는 북한의 협상 전술로 파악했다는 뜻이다.

8일 오전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장관 회담 뒤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에 "일본의 외상과 만나 지역 안정의 초석인 미일동맹,또 북한에 최대의 압력을 유지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썼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쳐]

8일 오전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장관 회담 뒤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에 "일본의 외상과 만나 지역 안정의 초석인 미일동맹,또 북한에 최대의 압력을 유지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썼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쳐]

#최대한의 압력
8일 오전 폼페이오 장관은 한 발 더 나갔다. 이날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상과의 조찬 회담 결과를 자신의 트위터에서 전하며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적었다.

6월 초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는 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한 뒤 사실상 자취를 감췄던 표현이었다.

그래서 폼페이오가 날린 이 트윗은 이날 오후 일본 외무성에서 진행된 외교장관 회담 관련 브리핑에서도 화제가 됐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기자와 담당 과장 사이에 이런 문답이 오갔다고 한다.

^기자="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 유지’라고 트위터에 썼는데, 실제 (한·미·일 외교장관이나 미·일장관)회담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나."

^담당 과장="트위터 내용은 나도 봤다. 그런 표현을 쓴 건 알고 있지만 실제 회담에서는 그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담당 과장의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회담에선 나오지 않았던 말을 폼페이오 장관이 일부러 트위터에 남긴 셈이 된다.

이런 폼페이오의 행동 자체가 북한에겐 상당한 압박일 수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8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飯倉)공관에서 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강경화 외교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8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飯倉)공관에서 회담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전세계가 강도
북한에 대한 폼페이오 장관의 압박은 외교장관 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고조에 올랐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강도라고 비판했다’는 AFP통신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 요구가 강도같다면 전세계가 강도다. 안보리 제재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고 받아쳤다.

또 전날 기자들에게 폼페이오 자신이 했던 “(협상에서)진전이 있었다”는 발언이 이날은 “진전만으로 기존 제재 조치의 완화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는 도쿄의 외교가에선 “북한을 순진하게 대했던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게서 상상도 못했던 비난을 받은 뒤에야 북한의 협상 전술 등 실체에 대해 파악했고, 그래서 북한에 대해 점점 더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전략적 차원에서 일부러 더 강경한 압박책을 쓰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 평양 회담 취재를 위해 폼페이오 장관과 동행했던 미국 블룸버그 통신 니컬라스 워드험 기자는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홈페이지에 올린 취재기에서 “지난 6일 오전 평양 도착 당시 폼페이오 장관 일행은 자세한 방북 일정을 전달받지 못했고, 심지어 숙소조차 파악 못 했다”고 썼다.

워드험은 “30시간도 안 되는 혼란스러운 방문의 시작이었다. 장관과 수행단, 동행한 기자 6명은 예상치 못하게 평양 외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야 했다”며 “세상에서 가장 은둔하고 예측 불가능한 정권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줬다”고 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김지아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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