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북한의 불법 자금 규모 문제다. 미국은 불법 자금 규모를 5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조사국보고서(CRS)는 그 근거로 매년 마약 밀매 수입으로 1억~2억 달러, 위폐 수입으로 1500만~2500만 달러 정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 다른 불법 활동 자금 규모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 자금 규모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불법 자금의 용도 문제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불법 자금 가운데 소위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 자금으로 1억 달러 정도를 지출하고 나머지는 무기 구입에 쓰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통치 자금이란 김 위원장이 군과 당, 정부 관료들로부터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뿌리는 외화나 선물 비용이다. 이와 달리 불법 자금이 북한 경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남북교역을 제외하면 매년 8억 달러 정도의 무역수지 적자를 내고 있으며, 이 중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을 공제하면 6억 달러 정도가 된다. CRS 최근 보고서는 북한이 이 같은 무역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을 불법 거래로 보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불법 자금 규모 산출도 상당 부분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법 자금이 차단될 경우 북한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과 전망은 북한 무역수지 통계의 중요한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즉 통관기준으로 작성된 북한의 무역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북한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족 간 거래에 속하는 남북교역과 금강산 관광으로 인한 외화수입, 해외 친지들의 송금, 해외 식당 운영 수입과 해외 파견 근로자의 임금소득 등이 대표적인데 이 수입은 연평균 3억 달러 내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의 무상원조와 차관 형태의 원유 수입도 연평균 약 1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북한이 정상적 소득으로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무역적자 규모를 이용해 불법 자금 규모를 역추정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으며, 이를 대북 불법 자금 차단 조치의 효과를 예상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김정일의 통치 자금을 묶어 두어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는 크겠지만 북한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조치 이후 북한 무역 규모의 급격한 변동이나 외화 부족에 따른 환율 급등 현상 등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대북 금융제재 조치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지나치게 과대포장됐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다른 국가들과 정상적 관계를 맺기 위해 화폐 위조, 마약 거래 등의 불법 행위를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칫 불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이뤄진 분석과 전망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북한을 중국 편향으로 몰고 가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음도 한번쯤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이영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