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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청와대의 아마추어리즘을 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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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경제에디터

이상렬 경제에디터

윤종원(58) 신임 경제수석은 투수로 치면 정통파다. 변화구 대신 강력한 직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와 테니스를 쳐본 사람은 정작 그의 두 번째 서브에 놀란다. 통상 첫 번째 서브가 실패하면 두 번째 서브는 안정적으로 넣기 마련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두 번째 역시 힘을 제대로 실어 파워서브를 날린다. 영리하게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정공법을 택하는 그의 스타일은 경제 관료로서도 정평이 나 있다.

노동 시장 개혁 없이 성장 동력 되살리기 어려워 #IMF, OECD 근무 경험 살려 노동 개혁 주도하길

윤종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수석으로 뽑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카드 중 하나다. 그 이유 중 한가지는 그가 최근 5년간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2012년 11월~2014년 10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2015년 10월~2018년 6월)를 지낸 점이다. 그는 IMF와 OECD 회원국들의 경제적 부침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어떤 리더십과 정책이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지, 어떤 사회가 개혁을 성공시키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윤 수석이 그 경험과 안목을 위기의 한국 경제를 살리는데 온전히 쏟아내기 바란다.

또 하나는 한국 경제에 대한 IMF와 OECD의 권고와 관련돼있다. 두 기관은 그동안 경직된 노동시장을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하며 줄곧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문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유독 개혁 성과가 미흡했던 것이 노동 분야였다. 노동 개혁 없이 생산성 향상은 어렵다.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의 ‘내 밥그릇 지키기’ 행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지 오래다. IMF 상임이사와 OECD 대사를 역임하는 동안 그는 당연히 이런 권고를 숙독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게다가 윤 수석은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의 역동적 개혁 과정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OECD 한국대표부가 파리에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과 문 대통령은 공통점이 여러 개다.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 기대 속에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고, 지난해 5월 대통령이 된 ‘취임 동기’다.

1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 선을 오르내리지만, 마크롱은 40% 선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 성적에선 마크롱의 노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프랑스 경제의 활력을 갉아먹고 있던 실업 문제가 개선되는 기미가 뚜렷하다. 1분기 실업률은 9.19%로 아직도 높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이후 꾸준히 낮아져 2009년 이래 최저수준으로 내려왔다. 여기엔 노동 개혁과 법인세 감면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한 마크롱의 리더십이 결정적이었다. 세금이 낮아지고, 노동 시장이 유연해지자 프랑스를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오고 덩달아 고용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마크롱은 프랑스의 대표적 강성 노조인 철도노조의 파업을 제압하고 국영철도 개편안을 관철했다. 시라크 대통령도, 사르코지 대통령도 굴복시켰던 철도노조였지만 이번엔 석달간의 파업이 실패했다. 마크롱 정부가 원칙을 세우고 물러서지 않자 프랑스 국민들도 불편을 감수하고 정부 편을 들었다. 그 결과 앞으로 신입사원의 종신고용 혜택이 사라지고 과도한 복지혜택은 축소된다. 만성적인 ‘프랑스병’ 수술을 위해 지지율 추락을 감내한 마크롱의 소신이 빛을 발한 또 하나의 장면이다.

나는 윤 수석이 프랑스의 한 복판에서 지켜본 마크롱의 개혁 성공기를 문 대통령과 함께 공유하기를 당부한다. 집권 과정에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준 노동계가 아무리 고맙다 해도 그 부채감 때문에 노동 개혁을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대통령을 설득하길 바란다. 그래서 노동 개혁 없인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살리는 것이 요원하다는 것을 문 대통령이 깊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

일이든, 스포츠든 윤 수석의 승부욕은 관가에서 유명하다. 그가 그 승부욕을 제대로 발휘해 한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경제수석이 되길 기대한다.

이상렬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