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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청와대에서 할 만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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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 개입 사건이 펼쳐지면서 이 정부가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가에 의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장 실장의 석연찮은 행동을 “추천은 아니고 덕담만 했다”고 우스운 해명을 하다가 ‘웬 궤변이냐’는 비난에 “권유는 했으나 탈락하지 않았느냐”며 논점을 바꿨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의혹 #“시스템 정상 작동”은 논점 이탈

장하성의 행동은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의 국민연금 개입 수사에 비추어 보면 형법상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해당한다. ‘공무상 비밀누설’도 의심된다.

우선 직권남용-.

청와대 참모가 공개 모집으로 진행하는 공공기관장 인사에 개입하면 불법이다. 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지키는 국민연금 CIO는 고도의 전문성과 투명성, 합의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법과 정관에 따른 엄격한 공모와 심사를 거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제청으로 복지부 장관이 임명한다. 청와대 정책 참모가 끼어들 공간은 없다. 하물며 장하성은 CIO 공모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인과 두 차례 전화에서 “내부 승진 대상이나 국내 인사 중 적합한 사람이 없다”며 거의 CIO 임명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말을 했으니 월권도 보통 월권을 한 게 아니다.

둘째, 권리행사 방해-.

청와대 참모의 인사 개입은 대통령의 뜻으로 읽혀 공모니 심사니 승인이니 하는 절차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공모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기회는 ‘불평등하게’ 박탈되고 과정은 ‘불공정하게’ 왜곡된다. 당연히 결과도 정의스럽지 않다. 청와대가 장하성의 행동을 ‘덕담’이나 ‘권유’ 같은 포장지로 감싸더라도 그건 그들의 언어일 뿐 내용물이 ‘개입’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장하성의 인사 개입은 그 자리에 공모한 사람들뿐 아니라 심사권자·승인권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을 것이다. 검증 라인에서 장하성이 민 특정인이 걸러졌으므로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주장은 포인트를 잘못 짚었다. 애초부터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장하성이라는 개인의 부당한 인사 개입이었다.

셋째, 비밀누설-.

장하성은 자기가 점찍은 특정인에게 “(운용 기금을 공공사업에 사용하려는 정부의 압력을 막는 방법에 대해)그 부분은 총 기금의 1%로 한정돼 있다. 추가로 사용하고 싶으면 채권을 발행하고 그 채권을 사겠다고 일단 결론지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세금과 달리 국민 개인의 재산이다. 개인 돈을 공공사업에 쓰겠다는 이 정권의 철학과 정책은 저항권 논란을 부를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장하성은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CIO 심사위원회가 낼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일단 결론지은’ 답을 특정 후보에게 누설했다.

장하성은 그동안 금융권 인사가 있을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개입설이 그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렇게 반재벌, 반재벌 하던 사람이 막상 재산 명세를 까보니 90여억원 중에서 주식이 47억원어치였는데 삼성SDI, 기아차,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아내는 황금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 주식만 120주를 갖고 있었다(2017년 8월 발표). 젊은이들을 향해 “재벌에게 분노하라. 저항하라”고 소리치지만 않았더라도 장하성의 재벌 주식 다량 소유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장하성이 정책 컨트롤타워에 올라 주도했던 최저임금제는 저소득층의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켰고, 소득주도 성장론은 현실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책에서나 인사에서나 장하성은 할 만큼 했다. 문 대통령이 현실적인 경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그의 지금 역할일 듯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