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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안에서 싸우려면 차라리 갈라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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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비극의 끝은 희극인가.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바닥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런 한국당이 코미디쇼를 벌이고 있다. 지독한 패배의 뒤끝이라 동정이라도 받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조롱거리다.

지방선거 참패한 자유한국당 #사과만 하고 달라진 게 없어 #9년을 계파 싸움으로 말아먹고 #또 다시 계파 다툼 벌이나 #헤어지면 죽는다고 하지만 #안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나아

개표 결과가 나온 바로 다음날 한국당 의원들은 국회 중앙홀에 무릎을 꿇었다. 조문(弔文)을 연상시키는 검고 큰 글씨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걸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무엇을 반성하는지, 정말 잘못한 게 있다고 느끼기라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비상대책위원장을 구하는 일도 이벤트처럼 됐다. 무엇을 하려고 외부 인사를 구하는지 개념이 없다. 온갖 사람을 다 들먹인다. 연예인 공천을 닮았다. 지명도만 있으면 이용해 보겠다는 투다. 국회의원들에게 휘두를 칼자루를 쥐여주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한 얼굴마담을 내세워 반성하는 시늉이나 하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런 상태로 비대위를 꾸린들 정말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위원장을 이야기할 것도 없다. 당장 안에서부터 계파 싸움이다. 아직도 ‘친박(親朴·친 박근혜)’ ‘비박(非朴)’이라고 한다. 서로 나가라고 삿대질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정부 4년을 어떻게 말아먹었는지 국민은 기억한다. 그 갈등의 세월을 모두 전직 대통령에게만 책임지울 수 있는가. 그러고도 계파를 챙기겠다니 아직도 바닥을 보지 못한 탓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외쳤다. 해방 직후 좌우 대립과 친일 논란을 덮고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논리였다. 이 말은 그 이후 줄곧 한국 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정당마다 갈등을 죄악시하고 통합을 미덕으로 여겼다. 더군다나 대통령 선거가 아닌가. 뭉치면 정권을 잡고, 헤어지면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는 것이 절대기준이었다.

김진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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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김영삼-김대중 야당 지도자의 분열은 두고두고 뼈아픈 실패의 표본이 됐다.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 놓고도 양 김씨의 분열로 정권을 다시 민정당에 돌려줬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신군부의 이인자였던 노태우 후보가 합법적인 민선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줬다. 이때도 국민은 ‘뭉치면…’을 외쳤다.

그런데 정작 뭉쳤으면 어땠을까? 이명박-박근혜의 지난 9년 정권과 달랐을까? 신파(新派)와 구파(舊派)가 갈려 5·16 쿠데타를 “올 것이 왔다”(윤보선 전 대통령)고 했던 제2공화국 꼴이 되지는 않았을까?

87년 당시 양 김씨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무교동 사무실과 통일민주당 중림동 당사를 구하는 데는 김무성 의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양 김씨는 철저히 5대5의 원칙을 지켰다. 당무위원은 당연히 같은 수로 임명했다. 원내총무를 김영삼계가 맡으면 사무총장은 김대중계가 차지했다. 심지어 환경미화원과 전화교환원까지 같은 수로 나눴다. 결국은 대선 후보를 결정할 지구당위원장 숫자로 갈등을 빚다 쪼개졌다.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쪼개지는 과정도 그렇다. ‘난닝구-백바지’ 싸움은 결국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신구 세력의 갈등이었다. 그러나 ‘폐족(廢族)’이라 선언했던 ‘친노(親盧)’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70%를 넘는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했다. 6·3 지방선거에서는 TK(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싹쓸이했다. 화려한 부활이다.

대통령 선거는 뭉치기만을 요구한다. 의견 차이를 묵살한다. 국가 주도 성장론과 자유시장경제를 한곳에 때려넣는다. 힘 있고 목소리 큰 사람이 주인이다. 다른 목소리를 배신자라 낙인 찍는다. 국가 주도론자와 자유시장 경제론자가 서로 손가락질한다. 안보론자와 인권론자가 서로 비난한다.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지지자들도 선명성 경쟁이다. 뺄셈만 한다. 그러면서 한 그릇에 담아야 하나. 보수가 ‘잡어탕’인가.

보수건, 진보건 하나의 정당만 요구한다.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옳은 말’보다 ‘당선 가능성’이 중요하다. 사표(死票)를 줄이고 당선시키는 게 목표다. 후보는 막말을 해서라도 눈길을 끌고, 유권자는 욕을 하면서 찍어 준다. 이런 구조가 새로운 가능성과 인물의 등장을 모두 틀어막는다.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하다못해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라도 바꿔야 한다.

아직 한국당 의원들은 바닥을 보지 않았다. 바닥을 밟아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양 김씨도, 열린우리당도 그랬다. 안에서 싸우려면 차라리 쪼개져라. 힘든 일이다. 그래도 지금 꼴보다야 낫지 않겠나. 제발 발버둥치는 모습이라도 좀 보여라.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